지금 나는 라이프치히(Leipzig) 중앙역 근처에 있는 호텔에 있다. 지난 일요일에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당일 밤에 이곳에 도착했고, 어제 첫날 워크숍 일정을 마친 뒤 둘째날 워크숍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아까 막 호텔 조식을 먹고 돌아와 이를 닦기 전에 잠깐 시간이 나서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2023년 이후 독일 출장만 벌써 5번째이다. 그리고 매 출장마다 이곳 라이프치히는 목적지에서 빠지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작년에는 1달간 이곳 라이프치히에서 지내기도 했다. 연구원에서 국제 협력을 촉진하는 글로벌 모빌리티 프로그램을 3년간 책임자로 수행한 덕분에 이렇게 자주 독일에 드나들 기회를 얻게 되었다. 덕분에 라이프치히라는, 이전에는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했던 이 도시가 무척 익숙해졌고, 이제는 대충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감이 오는 수준이 되었다. 물론 어제와 오늘 아침에 라이프치히 시내 달리기를 하면서 5~6 km 정도 뛰다가 '여기에 이런 게 있었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어 놀라기는 했지만. (여담이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곳에서 파견 생활을 1달 정도 했는데, 그 이전에 달리기의 재미를 알았다면 파견 생활 내내 매일같이 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곳 독일의 연구자들과 직접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없다. 대부분 기계공학과 전공인 이들은 복합소재를 제조하고, 시뮬레이션 계산을 하고, 재활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화학을 전공한 내 관점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이므로 내 연구 주제와 직접적으로 겹치는 것이 없다. 대신 나는 일종의 coordinator로서 실제 협업을 도모하는 분들의 만남이나 워크숍 및 심포지엄 조직 및 참석을 주선하고 있다. 다행히도 나는 해외 출장이라든지 외국어로 진행하는 행사 및 대화에 큰 거부감을 가지지 않기에 이런 임무를 수행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기에 이런 역할을 하는 데 제격이었다. 


혹자는 '남 좋은 일만 하고 본인이 거두는 몫은 없다.'며 의아해 하기도 하는데, 세상에 공짜로 얻는 것 없고 마냥 퍼주기만 하는 것도 없지 않겠는가? 기왕이면 남들이 잘 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될 수 있도록 시간을 쓰는 것에서 작은 보람도 느꼈다. 그리고 책임자로서 집행해야 하는 글로벌 모빌리티 프로그램의 연구비 역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재정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글로벌 모빌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언어와 문화가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을 꾸준히 진행한 것도 훗날 더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지금은 협력 기관에서 제외되기는 했지만, 핀란드의 알토 대학(Aalto Yliopisto)과의 협력은 연구 논문 및 교환 방문 등 좋은 결실을 맺기도 했다. 그래서 글로벌 모빌리티 프로그램 수행 과정은 뜻깊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나야말로 이 과제의 최대 수혜자가 아닌가 싶다.


글로벌 모빌리티 프로그램은 2025년을 끝으로 모두 종료되므로, 지금 독일 출장이 사실상 마지막 공무 출장이 된다. 추후에 복합소재 관련 일로 다시 독일을 찾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접적인 공동 협력 과제 수행 주체는 내가 아닌 다른 박사님들이 될 것이므로 그건 그분들의 결정에 달릴 것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좋았지만, 이 프로그램 수행 중에 한-독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중대형 과제가 하나라도 수주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연구원의 연구자들이 독일 협력 기관과 공동 과제 수주를 위해 적어도 몇 번의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하고자 한다. 이전에는 그런 시도가 전무했으니. 해외 기관과 공동 연구를 하고 과제를 함께 도전한다는 것이 이토록 쉽지 않은 일인지 미처 몰랐다. 부디 수 년 안에 한-독 공동 과제 수주가 꼭 성취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일은 드레스덴(Dresden)으로 건너가고, 금요일에 귀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길지 않은 여정이라서 독일 친구들이 좀 아쉬워했지만, 내년에 여행으로 다시 이 나라를 찾을 예정이다. 독일은 정말 멋진 나라다. 다들 볼 거리 없고 먹을 거리 없다며 투덜대지만, 이 나라만큼 모든 것이 평균 이상 하는 선진국은 정말 드물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Ich mag Deutschland!



Yours Sincerely,

Sung-So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