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행이라기에는 단촐한 MT 같은 것이었다. 정읍교회에서 40대 젊은(?) 신자 위주로 구성된 모임인 엠마우스회에서 모임을 계획했는데, 여행 일자는 한글날 휴일을 낀 10.9.-10., 그리고 장소는 다름아닌 일본의 쓰시마(対馬)였다. 독일 체류 중이던 9월 중에 카카오톡과 전화를 통해 관련 모임 참여 연락을 받았는데, 속으로는 '그 많고 많은 장소 중에 하필이면 쓰시마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기왕 오랜 기간 휴면 상태에 들어가 있었던 엠마우스회가 활동을 재개하기 위한 신호탄으로서 준비한 모임 안 갈 수는 없겠다 싶어 참석 의사를 표명했던 것이었다.


독일에서 귀국하기 전에 걸린 감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던지라 컨디션 난조가 조금은 걱정되었다. 아니나다를까, 전날 부산역 근처의 한 모텔에서 잠을 청하는데, 모기가 너무 많았던 데다가 바닥이 딱딱하고 추워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눈만 감고 대여섯 시간을 보냈던 나는 아침 일찍부터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생각보다 부산항 여객터미널은 굉장히 세련된 신식 건물이었고 내부와 외부 모두 지저분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멋진 곳이었다. 항상 여권을 들이미는 곳은 공항이었는데, 항구에서 여권 심사를 받아보니 기분이 남달랐다. 아무튼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멀미약을 들이킨 뒤 우리는 모두 쓰시마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본래 쓰시마의 최대 거점이자 남부에 자리잡은 이즈하라(厳原)로 가야했지만, 이날 기상 상황의 악화로 인해 북부의 히타카쓰(比田勝)로 항로가 수정되었다. 기상 상황이 얼마나 나쁘기에 그런가 했는데, 부산을 떠나 쓰시마로 가까이 갈수록 파도가 높게 치는 것이 굉장했다. 나는 멀미약의 기운 + 전날 제대로 못잔 잠 때문에 배 안에서 정말 쓰러진 채로 잠을 청했지만, 높은 파고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덩달아 뱃멀미로 고생하는 선내 승객들의 구토 소리를 명확히 들을 수 있었다. 2시간 여의 항해 끝에 겨우 히타카쓰에 다다른 모든 승객들은 긴 줄로 늘어서 입국 심사를 받았고, 여행사 측에서 급히 빌린 전세 버스를 타고 히타카쓰에서 약 2시간 정도 걸려 이즈하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완전히 반대의 경로를 따라갔다 ㅡ 이즈하라에서 히타카쓰로 간 뒤, 히타카쓰에서 출국 심사를 거쳐 부산항으로 가는 배를 탔는데, 전날과는 달리 파도가 심하지 않아 승객들이 덜 고생했다.


짧은 쓰시마 여행의 기록은 아래 세 문단으로 정리 가능할 것이다:


1. 당신이 낚싯꾼이거나,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이거나, 면세 쇼핑을 통해 사는 술과 담배로 이익을 남기고자 하는 부산 사람이 아니라면 쓰시마 여행을 가는 것은 시간 낭비에 가깝다. 일본 열도에 사는 사람들조차 멀다고 느끼는 쓰시마에는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이 별로 없다.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기념물이라든지, 명승지라든지, 혹은 한국과의 특수한 관계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관광명소가 별로 없다. 그나마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이 한국 혹은 일본의 관광 도시의 전적인 '하위 호환'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쓰시마에도 아름다운 바닷가가 있지만, 제주나 오키나와(沖縄)의 그것이 더 유명하고 볼 만하며, 쓰시마에도 신사(神社)와 번주(蕃主)가 머물렀던 주거지 유적이 있으나 규슈(九州)에 있는 수많은 신사와 성(城)에 비할 바 못된다. 그렇다면 쓰시마의 관광지가 조금 더 싸다든지 해야 할텐데, 부산 사람이 아니고서야 거주지에서 부산까지 간 뒤, 배를 타고, 여행사의 전세 버스를 타고 그런 목적지에 가는 것이 금전적으로나 시간 측면에서나 이득이 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게다가 딱히 쓰시마 관광지에 조금 더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고 하기에는 빈약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고종(高宗) 황제의 고명딸인 덕혜옹주(德惠翁主)와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의 딸인 고니시 마리아(少西マリア)의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은 아니기에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훑고 지나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2. 이 모든 문제는 '여행사 패키지'를 끼고 여행을 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확실히 깨달은 것이, 소도시 여행에는 절대로 여행사 패키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단체 여행의 경우, 이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여행사 패키지의 효율적인 여행 계획은 '안 그래도 볼 게 많고 이동이 번잡한 대형 관광도시 및 주변 당일치기 관광명소'에나 저력을 발휘하지, 이런 소도시 여행의 경우 오래 머물러야 그나마 흥취를 느낄 만한 곳조차 잠깐 찍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는 점에서 여행의 재미를 크게 감소시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여행의 큰 재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식사의 즐거움을 완전하게 앗아가 버리는 문제도 있었다! 여행사와 연계된 음식점은 모두 한국인들이 소유한 음식점으로서, 도무지 쓰시마 현지 사람들이 식사하러 가는 곳일까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메뉴판도 없고,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겠는 이런 평범한 음식을 먹는다는 게 큰 불만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내가 만일 다음에 일본의 어느 작은 도시를 여행한다고 하면 택시를 타고 다니느라 돈을 좀 많이 낼지언정 절대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3. 쓰시마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도 쓰시마 관광을 더 재미없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일본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특별한 산업도 없이 늙어만 가는 쓰시마 섬의 경제는 전적으로 한국인 관광객의 씀씀이에 달려 있다. 과거처럼 전통적 어업에 종사하며 가난하게 살 요량이 아니라면, 한국인들이 지갑을 열게끔 유도하는 것이 쓰시마 사람들 자신들의 수입을 늘리는 데 큰 이득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나름 관광 중심지라고 하는 이즈하라에는 여전히 한국 손님을 받지 않는 식당들도 여럿 있었고, 일단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이 많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곳들도 많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장사를 할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냥 자기들이 살던 대로 살아가면서 '너희 한국인들은 매너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매너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이렇게 돈을 펑펑쓰는 중년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더 '돈을 뜯어낼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지를 만들지 못하다니 그저 한심할 뿐이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여행사 패키지와 연계된 쓰시마 내 숙박 시설 및 식사 장소가 다 한국 자본과 연계된 곳일는지도 모른다.) 쓰시마는 나름 조선에서 파견한 통신사(通信使)나 수신사(修信使)가 지나간 곳이고, 몽골의 침략이나 여말선초 대마도 정벌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의 중심에 있는 곳이기도 한데, 한국인을 상대로 이런 역사를 기반으로 한 관광상품을 개발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쓰시마 관광 종사자들의 개념 및 아이디어 부재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따지고보면 한국 여행사는 잘못이 없다. 어쨌든 이런 곳으로 꾸역꾸역 오고자하는 여행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대한 자신들의 자원으로 상품을 개발하는 것인데, 애초에 관광 자원이 부실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이 섬에서 외국 여행사가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리하자면, 이 섬은 여행지로는 (현재로서는) 부적격이다. 돈을 조금 더 들이면 규슈의 더 좋은 관광지를 갈 수 있고, 차라리 국내의 여행지가 훨씬 더 방문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배를 타고 가장 가까운 외국에 여행을 간다는 그런 경험 외에는 그다지 유익한 경험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쓰시마의 비극이다. 모든 것에서 만족감을 누리기 부족한 이런 섬에서 원주민마저 관광객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면, 도대체 이 섬에 여행을 왜 와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내가 낚싯꾼, 라이더, 애연가가 아닐 바에야 쓰시마에 와야 할 이유랄 것은 없었다. 창의적인 의견을 낼 수 있는 젊은이들이 지역 관광산업을 위해 일한다면 쓰시마가 지정학적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고령화에 별다른 산업 시설도 없는 이 섬의 현재를 보아 하니 그런 미래는 요원하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웬만하면 모든 여행지에 후한 점수를 주는 나로서도 이런 부정적인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정읍교회 교우들과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는 무척 좋았다. 쓰시마라는 장소가 더 많은 시간동안 이야기하고 삶을 나눌 기회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주일마다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분들과 1박2일간 함께 이동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거기서 이 여행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