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상압에서 초전도체 특성을 보여준다는 LK-99. 지난 7월 하순부터 이어지고 있는 LK-99와 관련된 논란은 과거 우리나라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인간배아줄기세포에 관한 황우석 박사의 《Science》 게재 논문이나 얀 헨드릭 쇤(Jan Hendrik Schön)이 《Nature》에 게재했던 논문이 불러일으킨 조작 논란과는 결이 다르다. 공명심 때문에 재현 불가능한 내용이 학술지상에 오르게 된 것은 수많은 관련 연구인력과 일반 대중의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명백한 불행이지만, 저자들이 재현 불가능성을 알고서도 게재한 것인지 혹은 모르고 게재한 것인지에 대한 구분은 필요하다. 황우석와 쇤의 연구 논문은 전자에 가깝지만, LK-99는 대체로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생각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게 만드는 것은 LK-99를 제조한 사람들의 레시피(recipe), 곧 제조 과정이 다른 시각에 다른 사람들이 다른 환경에서 재현 실험을 진행하기에 무척 용이하다는 데 있다. 애초에 사기를 칠 양이었으면 남들이 도저히 따라하지 못할 방식으로 꾸며놓아 제3자의 검증 과정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 지극히 편했기 때문이다. 황우석의 경우 이러한 실험을 수행할 만한 인프라와 기술력을 보유한 실험실이 전 세계에 얼마 없었고, 쇤의 경우 그 재현 과정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반면 LK-99는 흔하디 흔한 구리와 납, 그리고 인회석(燐灰石)을 구해 적절히 혼합한 뒤 적절한 환경에서 '구우면' 된다고 하니 이 어찌나 해볼만한 일 아니겠는가? 이런 재료와 실험 도구를 가지고 있는 실험실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전 세계 중소도시마다 하나씩은 있을 정도이다.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당당하게 들이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해당 실험을 수행한 '퀀텀에너지연구소'의 두 연구원은 비(非)주류 이론을 두고 수 년간 수 천번의 실험을 반복하며 초전도체 제조에 매진했다고 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날 정도로 순진하고도 우직한 이 연구원들의 자세는 한탕을 노리려고 꾸민 거대한 사기극과는 어딘가 맞지 않다. 사기꾼들의 입장에서 최대의 수익을 내려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한 몫 단단히 챙기는 것이 당연하거늘, 이 사람들의 행동양식은 노련한 사기꾼들이 볼 때에는 글러먹은 사기꾼들의 그것이다.


그러니 나는 저자들이 오랜 기간 실험을 하다가 어떤 현상을 실제로 실험적으로 경험하고 관측한 바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것이 정말 상온, 상압에서의 재현 가능한 초전도체 특성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오랜 기간 이 연구에 매진한 나머지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지경에 이른 건지, 아니면 정말 운 좋게 특정한 경우에서만 발현되는 어떤 현상을 보고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호작약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현재까지 이들이 주장하는 바를 정확하게 만족시키는 실험결과가 재현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론상의 문제, 재현의 어려움, 기존 학계의 회의적인 시선은 현재 LK-99가 아직은 더 연구되어야 할 물질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물질을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과학계 밖에서 좋게 말하자면 흥미롭게, 나쁘게 말하자면 추잡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 물질을 제조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몇몇 회사들의 주가는 널뛰기를 반복하고 있고, 유튜브와 블로그, 소셜 미디어 페이지에는 비(非)전문가의 온갖 영상과 글이 범람하고 있는데 정작 그 중에 옳은 소리를 하는 것은 몇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어느 '보나 사피엔스(Bona Sapiens)'라는 회사 대표가 어느 순간 KAIST 교수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ㅡ 개인적으로 라틴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너무 드러나는 저 회사 이름이 별로다. ㅡ 정작 그 사람은 자동차 부품 무역상을 한 뒤 지금은 전혀 다른 핀테크 업체 CEO이고, 그 전에는 몇몇 대학을 옮겨다닌 계약직 비전임교원 경력이 있었을 따름이다. 지금 학계 바깥에서 떠도는 정보의 신뢰도가 어느 수준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테마주'라는 소용돌이 안에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과학과 검증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보이는 듯하며, 이 때문에 우리 주변을 떠도는 온갖 정보들은 과학과 검증의 길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형국이다. 즉, LK-99는 이제 상한가와 하한가, 가짜뉴스와 과학적 진실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무간지옥을 떠돌게 되었다.


이미 수많은 분석 기사와 영상들이 LK-99를 다뤘으므로 굳이 몇 바이트의 데이터를 똑같은 얘기 하는 데 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과학자의 입장에서 뭔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점들을 몇 가지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사람들이 읽고 검증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장(場)을 열었다는 점에서 동료평가(peer-review)를 받지 않은 논문을 업로드하는 프리프린트(preprint)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동시에 검증과 평가가 부재한 이런 시스템에 대중의 관심, 특히 투자금과 직결된 노르스름한 색깔의 관심이 끼어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현대 인터넷 기반 출판 환경에서 수십년 전과 같은 동료평가 및 출판 형태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증과 평가가 무가치하다고 치부해 버리면 향후 학술지에 실리는 문헌들이 죄다 황당무계한 소설로 오염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관련 연구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LK-99 제조와 관련된 첫 프리프린트 논문은 공저자들의 동의도 없이 투고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프리프린트가 온갖 잡다한 쓰레기통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효과적인 윤리 규칙이 제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전까지는 웹 기반의 프리프린트가 저장소(archive 혹은 depository)라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있는 남아 있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LK-99 관련 사람들의 이력을 보면 비(非)주류적 마인드가 똘똘 뭉쳐진 느낌이다. 이 물질이 초전도성을 보이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고려대 최동식 교수의 이론이 일단 그러하다. 그리고 외부 지원사격을 해 주고 있는 윌리엄앤메리 대학의 김현탁 교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재직 당시 모트금속-절연체 절연체 전이 현상에 대한 연구 결과를 둘러싼 논란으로 한국물리학회 응집물질물리분과 소속 교수들과 대결하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주요한 발견이라면 마땅히 《Nature》나 《Science》까지는 아니더라도 권위 있는 학술지에 투고하여 동료평가를 받는 것이 현대 과학계의 기본 원칙처럼 여겨지는데 이를 마치 시간 낭비 혹은 불필요한 과정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기존 학자들과는 자못 다르다. 우리나라는 비주류가 주류의 냉대와 행패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겨내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LK-99 관련 연구자들의 모습에 환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차고에서 위대한 발견을 해낸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과 같은 희대의 프론티어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3.  과학자들의 공통된 태도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너무 성급하게 논문이 프리프린터 형태로 공개되었고, 이 때문에 이론적 토대와 다양한 실험 데이터를 완비하지 못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신뢰성이 없는 연구 결과가 되었으니, 향후 좀 더 연구를 한 뒤 이로부터 발견되는 해당 물질의 성질들에 대해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LK-99 발견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진 뒤, 실제로 실험을 해 보지 않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의외로)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한 것은 바로 100% 검증된 사실이 아니면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과학자들의 기본 자세 때문이다. 정치가들이야 지금 주장하는 바가 시대에 맞지 않아 권력을 잃었다손 치더라도 동조하는 사람들의 힘을 받아 정권을 다시 잡을 수도 있고, 애초에 사람 사회에 대한 관점 자체는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선명한 정치적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과학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진짜 과학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옛 것을 수구적으로 지키다가 박살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배운다. 여기에는 천동설을 지지하던 사람들, 플로지스톤(phlogiston)이 있다고 믿은 사람들, 지상에는 에테르(aether)가 충만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심지어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가끔 포함된다. 이런 이유로 모든 과학자들은 0.01%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절대로 '이건 무조건 아니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일반 대중의 생각과는 다르게 과학자들은 그렇게 단호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ㅡ 그리고 대개 그런 식으로 일방적인 자기 주장을 신봉하는 과학자일수록 이상한 사람들이다. 


4. 일반인들의 연구교수(research professor)에 대한 인상이 학계에서의 그것과 무척 다른 것으로 보인다. 내가 아는 어떤 박사님은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니, 논문을 성급하게 프리프린트로 투고 및 공개한 고려대의 '포닥', 곧 권영완 연구교수가 잘못한 것 아니냐고 바로 대꾸했다. 사실 연구교수는 계약직 비전임교원으로 1~2년에 한번씩 성과를 기반으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박사후연구원이다. 직함이 연구'교수'지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강의도 하고 실험실을 꾸려나가며 석박사 학위과정을 양성하는 그런 '교수'와는 대학 내에서의 지위 및 봉급에서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게 LK-99와 관련된 질문을 해 왔던 일반인들은 모두 '고려대 교수'라는 데 초점을 두었다. 아니, 교수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또 당신들이 생각하는 교수는 아닌데, 그렇다고 이렇게 차별을 두면 연구교수를 폄하하는 것이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으니 그것 참 난감했다. 위에서 언급한 '보나 사피엔스'의 CEO 역시 몇몇 대학의 연구교수직에 있었는데, 이는 정규직 교원 자리에 임용되지 못해 자리를 옮긴 박사후연구원과 다를 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연구교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연구교수가 우리의 통상적인 개념 하에 들어 있는 교수가 아니라는 것이지...)


5. 아무리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이 멋지고 우아하더라도 절대 본문에서 'We believe that our new development will be a brand-new historical event that opens a new era for humankind.'와 같은 문장을 써서는 안 된다. 나는 LK-99와 관련해서 프리프린트로 최초로 공개된 논문의 가장 마지막 문장인 이것을 보고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