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키 구라모토 ㅡ 가끔 구라모토 유키라고 해야하는지 헛갈린다. ㅡ 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생일 선물로 교회 형에게 받은 것이 바로 2002년에 출시되었던 'Time for Journey' 라는 앨범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 소위 뉴에이지 음악 열풍이 불었는데 서방 세계에 훨씬 유명한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이나 앙드레 가뇽(Andre Gagnon)에 비해 우리 나라에는 유키 구라모토가 훨씬 더 유명해졌다. 거기에는 CF 광고 음악으로 'lake louise'가 삽입된 것이 한 몫 했겠지만, 아무래도 비슷한, 그것도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일본 사람의 감성이 우리 마음에 더 감명을 주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뉴에이지 음악이 비기독교적이느니 사탄의 음악이라느니 지금 생각해보면 귀 기울일만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논란 때문에 한동안 이 음반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 음반은 당시 집에 있던 CD 플레이어에서 가장 자주 재생된 음반 중 하나가 되었고, 이듬 해 reminescence,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Refinement 를 구입했다.


어제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갔다가 먼지가 수북히 쌓인 덮개를 열고 피아노를 1시간 가량 쳤다. 원래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칠까 하다가 유키 구라모토 악보를 옛날에 사 놓은 게 있어서 그걸 불현듯 꺼내놓고 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듣는 것도 기분 좋지만 진짜 연주하는 나도 마음이 즐거워진다. 특히 Time for Journey의 경우 나도 여행하는 것 같고, 때론 우수를 느끼다가도 유적지를 보며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피아노를 연주할 시간이 거의 없다. 언젠가 집에 디지털 피아노를 구매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결국 그건 없던 일이 되었고, 우리 집 피아노는 마지막 조율을 받은지 어언 4~5년은 된 것 같다. 매일 아침같이 집을 나서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내가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남들에게 민폐요, 사실 신고감이다. 한때는 연주도 잘하는 그런 화학자가 되자고 다짐했건만 시간은 날 그렇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그 때의 그런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허락된 시간이 1시간 정도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즐거운 시간이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