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초순의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열린 MRS 학회에서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맛있는 집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맹렬하게 씹었던 탓일까, 열심히 먹다가 아래 송곳니로 윗 입술 안쪽 살을 찔러 구내염이 생기고 말았다. 또 아프타치를 붙여야겠구나 하면서 입술을 뒤집어 까고 거울로 안쪽을 살펴보니 어라, 그 주변에 하얀 물집도 아닌 것이 뭔가 허옇고 탱글탱글하게 부풀어오른 게 서너개가 열을 지어 있는 것이 아닌가!

피곤하면 생기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일단 구내염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는데 ㅡ 하필이면 당시 발생한 구내염은 생각보다 오래 갔다. ㅡ 2달이 지난 2월에도 그 허연 물집같은 건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입술 가장자리에서 더 많아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많아진 건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확인을 안 한건지... 하긴 그 부분을 일일이 손으로 뒤집어까면서 확인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래서 1월에 서울대입구역에 있는 한 피부과를 찾아갔다. 그런데 요즘 피부과는 병원이 아니라 거의 클리닉이 되어버렸다. 거기서 진료 대기중이던 사람들은 전부 피부 미용 시술을 받기 위해 대기하던 여성들이었던 것 같고 병원 분위기도 내가 이전에 알던 피부과 병원의 느낌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입술 안쪽의 병변을 살펴보시더니 여기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고 큰 대학 병원에 찾아가보라고 하셨다. 섬유화가 진행된 것으로 큰 문제는 없겠으나 혹시라도 '편평 태선'일 수 있으니 조직 검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편평 태선? 대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당장 대학 병원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너무 빡빡한지라 평일엔 도저히 갈 수 없었고 마침 설 연휴인지라 그 이후를 도모해야 했다.

그러다가 지난주 토요일에 시간을 내어 한림대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포다이스 스팟(Fordyce Spot)일 가능성이 있지만 Oral L/P ㅡ 편평 태선을 이르는 말이었다. ㅡ 일 수도 있으니 떼어 내어 조직 검사를 실시해 봐야겠다고 했다. 뭐라고? 떼어 낸다고? 의사 선생님은 날 그렇게 침대에 눕히신 뒤 입 안에 마취 주사를 한 방 놓고 그 허연 물집같은 것을 도려내셨다. 생각보다 전혀 아프지 않았고 다만 고정을 위해 입 주변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놓고 가끔 손으로 눌러대시니 숨쉬기가 곤란했던 게 약간은 불만이었다. 한 바늘 꿰매었으니 음식 먹을 때 조심하고 입안의 경우 청결을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항상 소독을 해 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약국에서 가글액을 하나 샀다. 그리고 밥 먹고 나서,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주기적으로 가글을 하기 시작했다. 옛날보다 농도가 좀 묽어졌는지 뱉지 않고는 못 버틸 그런 화끈한 느낌은 없다. 한 30초 정도 입안에서 요동친 후 내뱉는데 상당히 개운하다. 개인적으로 잇솔질을 많이 하는 것은 치아와 잇몸에 매우 악영향을 줄 것 같다고 생각하는지라 잇솔질은 출근 전에 집에서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요렇게 매일 두 번만 하는데 대신 가글을 하면 괜히 이에 물리적인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유해한 것들은 손쉽게 제거하고 구취도 쉽게 제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구취가 심한 건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치실과 함께 가글을 쓰니 입안이 무척 상쾌하다.

포다이스 반점 정도에서 그쳤으면 좋겠는데 사람 마음이 꼭 그렇게 편하게만 먹을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이번 주 금요일 아침에 다시 병원을 찾아 조직 검사 결과를 듣고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부디 별 일 아니기를 바란다! 사실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는 게 이것이 입안에 났다고 해서 아프거나 뭐 특별한 이상 징후를 느낀 것은 전혀 아니었기에. 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Fine' 이라고만 얘기해 주면 너무 감사하겠어요.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