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홈페이지에 와서 글을 남길 여유조차 별로 없었다. 실험실에서는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진짜 심신(心身)의 여유 없이 계속 이것저것 실험만 하고 있다. 게다가 시차 적응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이제 늦은 저녁 시간이 되면 엄청나게 졸리기 시작하는데, 저번에는 고분자 침전을 잡다가 그 지루한 과정 중에 깜빡 정신줄을 놓고 졸 뻔했다. 이러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 밤 8시쯤 어느 정도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평상시에는 집에 도착하면 가방에 넣어 놓은 노트북을 꺼내놓고 전원에 연결시킨 뒤 샤워를 하고나서 인터넷 서핑을 조금 하고 잠에 들었으나 이 날은 통상적인 일과를 거부한 채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로 기어가 그대로 뻗어버렸다.


새로운 분야에 손을 뻗치는 것이 참 신나고 즐거운 것은 맞지만, 박사 과정 때와 포닥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른 것 같다. 박사 과정은 수 년의 시간동안 진행되기에 학위 과정 중에 조우한 새로운 분야를 온전히 내 영역 안으로 포섭(包攝)하기 위한 충분한 섭취 기간이 허용된다. 그러나 포닥은 1년의 계약을 기반으로 한 비정규직이기에 그 1년 안에 가시적(可視的)인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요즘 깨닫는다. 물론 내가 지난 반년동안 아무것도 아니 한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이대로 가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싶은 마음에 다소 압도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재 상태는 일종의 정체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매일같이 빠르게 달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리고 실험이란 게 생각대로 늘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가끔 이런 좋은 환경에서 정체된 상황 속에서 헤매고 있어도 괜찮은 것인지 굉장히 불안하다. 하긴 지금 문어발 뻗치듯 여러 일들을 동시에 하고 있으니 지칠 법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휴가 나온 뒤 쏟아지는 이런 저런 걱정 때문에 굉장히 지쳐있는 상태이긴 하다. 지난 주말에 진짜 '정말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통감(痛感)하며 침대에서 1시간이나 잠도 자지 않으면서 그저 뒹굴어댔다.


그런데 이런 답답한 느낌을 2월마다 느끼는 것 같긴 하다. 박사 과정 때도 일이 잘 안 풀려서 굉장히 답답해했던 시기가 바로 연말연시가 지나고 동력이 약해졌던 이 시기였지 않았나. 그리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특효약은 번뜩이는 결과물 단 하나였기도 했고. 그나마 교회를 기반으로 한 종교 활동과 이 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같은 것들이 내가 극단적인 곤고(困苦)함에 빠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생활의 일부가 아닌가 싶다. 좀 더 힘을 내서 또 내일은 합성을 하고, 코팅을 하고, 또 랩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해 보자.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