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때의 일이었다. 함께 활동하던 A 목사님이 어느 날 영어로 된 책을 건네시며 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혹시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줄 수 있을까?' 하고 물어보셨다. 책은 그리 크지 않은 B5 크기의 페이퍼백(paperback)이었고 123쪽 정도의 분량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이 책을 번역하려고 하셨는지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한창 기독교 교리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져가던 때였고, 또 내가 가진 작은 실력이 목사님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책 제목은 Anointing이었는데, 오순절교회(Pentecostal church)에서나 강조할 만한 각종 성령의 은사 및 사역에 대한  내용만 반복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데다가 치밀한 신학적 고찰이나 논리는 고사하고 단지 성경 구절을 복사해서 붙여 놓고 교차 인용해 놓은 수준이라서 도저히 장로교인이 읽고 영감을 받을 만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무슨 뜻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번역 작업을 개시했다. 박사과정생이 주중에 해당 작업을 할 여유는 없었고, 일단 책 내용을 한두 번 읽어본 뒤 9월과 10월의 주말에 집중해서 번역 작업을 완료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월에 4주 훈련소 입소가 예정되어 있어서 그 전에 끝내야만 했다.)


번역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수확도 있었는데 장로교에서 널리 참조하는 KJV, NIV 영어 성경 및 개역개정판 한국어 성경을 참조하다보니 각종 신학 용어들이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되는지 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중에 '동서 교회 대분열' 책을 펴낼 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번역한 내가 오히려 이 책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과 관련된 내용들만 따로 떼어내서 강조하면 그릇된 길에 빠질 위험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고, 번역을 하면 할수록 삼위일체라는 경륜 하에서 성령을 이해하는 것이 건전하고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어 A 목사님에게는 책 내용에 '다소' 부담스러운 내용이 '다소' 있다고 소심하게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어쨌든 성공적으로 훈련소 입소 전에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고 A 목사님께 메일로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눠서 2주의 간격으로 보내드려 검토를 부탁드렸고, 목사님은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두 해가 지나 A 목사님은 다른 지역으로 활동지를 옮기셨다.


그 해 가을 끝무렵 어느 날 나는 굉장히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료로 배포되는 B 목사의 책이 있기에 제목을 보니 '기름부으심'이었다. 기독교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Anointing의 번역어가 바로 도유(塗油), 즉 '기름 부음'이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책을 몇 장 넘겨 보았다. 아, 그리고 바로 알아차렸다. 논문이든 책이든 글을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 바로 내가 쓴 글은 내가 잘 알아본다는 것을.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의 선택과 문장 구조를 금세 파악한 나는 혹시라도 이것이 2년 전에 전송된 워드 파일의 내용과 동일하지 않을까 하는 절망적인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집에 돌아와서 예전 파일을 불러와 첫 장을 대조하는 순간 나는 그만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다행히(?) A 목사님의 핸드폰 번호가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었고 나는 자초지종을 듣고자 점잖게 핸드폰에 귀를 기울였다. 그분의 첫마디는 '안타깝고 미안하다.'라는 것이었다.
윗사람들의 번역 업무를 아랫사람들이 맡아 처리한 뒤 역자의 이름에는 윗사람의 이름이, 그리고 실제적인 업무를 담당한 사람들의 이름은 감사의 말에 적힌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과도 같다. 나는 이것이 그것은 전근대적인 뒤틀린 위계가 낳은 속세의 착취이자 비극이라고만 생각했지 복음을 전하고 더없이 낮아져야 할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결국 자신의 위에 있는 목사의 이력을 위해 A 목사가 일을 담당하게 된 것이고, 부득이하게 내 도움을 받은 것,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내 시간과 노력을 갈취한 것이다. 꿈만 같은(?) 이야기에 살짝 목소리에 노기가 묻어나올 뻔 했으나 나는 목소리를 이성으로 꽉 눌러버린 채 천천히 내 생각을 A 목사님께 전했는데, 대강 아래와 같았다.


"목사들도 연약한 한국인이니 목사들의 모임 가운데에서도 여러가지 불합리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부패한 학계에서나 일어날 법한 부정을 목도하는 이 시점에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신 당신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허망할 뿐이다. 과연 기독인들은 어디서 희망을 얻겠는가? 사실 A 목사 당신도 결국 무소불위 권력의 피해자이니 나는 당신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연민이 느껴진다."


그리고 수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이렇게 외치는 까닭은 오랜만에 방문한 웹사이트에서 그의 역서(譯書)로 이 책이 버젓이 명단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심히 좋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하도 정의를 부르짖는 요즘 SNS 글들을 보다 보니 뭔가 나도 하고싶은 말이 생겨버려 방아쇠를 당겨버렸다고 솔직하게 시인한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 아닌가. 오히려 일련의 여러 상황들을 겪은 끝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바와 더 많이 일치하는 곳에서 신앙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이것도 결국 나를 불쌍하게 여긴 하느님의 섭리이려니.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