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토요일 학내를 걷다보니 고전적인 흑백사진이 가득한 한 자보를 보았다. 맑스주의 연구회 '맑음'이라는 단체에서 내건 이 자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서를 기본으로 하여 계급투쟁,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등을 심도있게 다루는 그들의 세미나를 홍보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를 '맑스'라 써서 그 이미지를 환기시키려는 노력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닥다리가 되어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일성의 망령 위에 덧씌워진 그 이미지마저 새롭게 할 수는 없어 보인다. 대체 언제적 마르크스주의를 현 시대의 대안으로서 인식하려는지 참 놀라울 뿐이다.


물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병폐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시대의 사회학자들이 내놓은 연구결과와 신문의 기고문, 심지어 SNS의 짤막한 포스팅을 보더라도 우리 사는 사회는 (고대부터 언제나) 문제가 많은 사회였다. 헤겔의 변증법을 굳이 도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삶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지금의 문제점을 뜯어고치고자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왔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이전보다 더 나은, 그리고 실패하지 않는 모델을 향한 것이라야지 실패가 명증된 과거의 것을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혹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주의 이념이 이 땅에 구현된 적이 없다고 부르짖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을 지하에서 부활시키려 하고 싶겠지만, 그건 저주받은 악마를 소환하려는 사악한 흑마법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90여년동안 수많은 실험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었지만 결국 그 사회주의 이념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변질된 독재정, 왕정들만이 지구상에 남았고, 그 밑에서 고생하는 인민들의 굶주린 아우성이 사회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는 고소장처럼 되지 않았던가.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 계급투쟁이 이 세상을 더 가치있게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화학 교과서에 나오는 '연금술'같은 수준에서일 뿐이지 그것이 목적되는 대상으로서 깊이 탐독될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마르크스 연구회의 이름은 비록 '맑음'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지향하는 바가 '잔뜩 흐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바, 세미나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균형 잡힌 세계관과 역사관이라는 우산을 챙겨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