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할머니댁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은 뒤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려는데 휴대폰이 NFC 기능을 꺼둔 상태에서 배터리가 나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할머니의 권유 아닌 권유가 있기도 했고,피곤하지도 않겠다, 비그쳤겠다 그냥 걸어서 집에 갔다. 성원아파트에서 한라아파트까지 걸어오는데 20분 정도 걸렸던 듯 싶다. 버스를 타면 보통 10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재미있게도 할머니 댁은 내가 다니던 안양서초등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자연히 걸어오는 길은 내가 초등학교 등하굣길과 겹치게 되었다.

 

재화의 도달 범위처럼 사람도 자기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거기까지 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위치의 범위가 있다. 유치원 때는 진흥아파트 단지가 전부였다. 초등학교 때는 진흥아파트~안양서초등학교 및 진흥아파트~우성아파트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버스라는 수단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알면서 점차 만안구, 안양시 전역, 심지어 서울까지 범위가 확대되었고, 대학교가 되면서 이제는 한반도를 초월하여 다른 나라에서도 거리낌없이 다니는 수준이 되었다. 오늘 걸어온 길은 정확히 초등학교 시절의 도달 범위였는지라 흡사 갑자기 20여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주었다.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그 코너에 있던 편의점과 낡은 수퍼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별로 변하지 않은 골목의 주택가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항상 아침과 오후에만 그 길을 다녀서 몰랐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에 그 길을 걸어가니 주택 발코니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는 아저씨들이 많았다. 그 골목길의 경사와 거리가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다는 것에 잠깐 놀랐었는데, 그건 아마 내가 키가 그 옛날보다 20 cm 이상 커졌기 때문이겠지. 아참. 정우아파트 외벽은 연성대 사회협력팀에서 예쁘게 채색해 두었는데, 옛날에는 그 외벽 위에 아이들이 몰래 버려둔 떡볶이 컵들이 종종 보였었다. 그건 아마도 학교 앞 분식집에서 컵떡볶이를 사서 꼬챙이로 찍어 먹으면서 집으로 가다보면 딱 그 위치에서 떡볶이를 다 먹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컵에는 대부분 떡과 어묵은 남지 않고 약간의 양념과 채소가 남아 있곤 했는데, 초등학교 동창 중에 어떤 애가 길을 가면서 그 버린 컵들의 내용물을 하나같이 다 주워서 남김없이 먹었다는 놀라운 일화가 갑자기 떠올라서 약간 헛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진흥아파트 앞에는 맥주와 사케를 파는 작은 펍(pub)이 들어섰는데 한 번 가 보고 싶어졌다. '李서방양념통닭'이 예전에 진흥아파트 상가 건물에 있었는데 나는 항상 흘겨 쓴 '李'가 '총'처럼 생겼다고 봐서 늘 항상 어머니께 "오늘은 총서방 치킨 시켜 먹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어느새 개성 없는 프랜차이즈 치킨집으로 바뀌었다. 윗층의 진명유치원은 교회로 바뀐 지 오래되었는데 상가 수퍼마켓 주인 아저씨 아줌마는 여전히 거기 계신지, 맞은편 세탁소 아줌마는 여전히 아파트 안에서 '세탁~'이라고 외치며 다니시는 지 엄청 궁금해졌다. 버려진 공터처럼 보였던 놀이터 바닥에는 우레탄 소재의 타일이 깔렸고 작은 기구들이 설치되어 어린이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자세히 보니 벤치에 어린 남녀가 서로 부둥켜 안고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ㅡ 쳇, 어두운 데서 그러는 거 아냐. 우성아파트로 넘어가는 길은 우리 아버지가 늘 '떡산'이라고 부른 산을 깎아 낸 도로라서 그런지 항상 비가 온 다음날에는 말라 죽은 거대한 지렁이들의 사체가 즐비했었는데 요즘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학교에서 배운 지렁이는 10 cm 안팎이었는데 여기서는 환대도 거대한 20 cm 길이의 지렁이들이 꿈틀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피아노학원을 가던 동생은 그 광경에 아연실색해서 총총걸음으로 그 처참한 곳을 훌쩍 넘어갔다.

 

우성아파트 상가 건물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난 이곳 3층에 있던 피아노학원을 3년간 다녔다. 더 다녔다면 전공이 음악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그 기억을 되살리며 학원 간판을 보니 글쎄 좀 바뀌어있었다. 우성 아카데미? 예전에는 그 층에 피아노학원, 바이올린학원, 미술학원, 서예학원, 글짓기-웅변학원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피아노학원과 미술학원 말고 영어-수학, 논술학원이 있지 않은가. 아, 그러고보니 그 수많은 서예학원과 글짓기-웅변학원, 주산학원과 속셈학원은 다 사라진 듯하다. 오는 길에 벌써 몇 개의 보습학원과 입시 전문학원을 봤는지. 씁쓸하게 계속 걸어가는데 저쪽 맞은 편 건물들이 눈에 보인다.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거기에는 서점이 하나 있었고 그 서점은 피아노 악보책들을 꽤 많이 취급하던 곳이었다. 처음 거기에 간 것이 Mozart 소나타 책 1권을 사려고 갔던 것이었는데 그 때 정말 나도 모르게 으쓱하며 책을 사러 갔던 기억이 있다. Bartok 연습곡은 재고가 없어서 며칠 기다려야했고, 거기서 가장 마지막으로 산 악보책은 Clementi 소나타와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이었다. 피아노를 5학년이 되기 전에 그만 두지 않았다면 거기서 몇 권의 책을 더 샀을지도 모른다.

 

우성아파트를 지나 죽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한라아파트를 가려면 좌회전을 해야 한다. 가다보면 옛날에는 거기 거대한 상가 건물 1층에 조흥은행이 있었다. 내 생애 최초의 통장은 '날아라 슈퍼보드' 캐릭터인 미스터 손이 그려진 조흥은행 통장이었다. 그 계좌에는 매 분기마다 이자가 붙었는데 세뱃돈이랑 친척들에게서 받은 용돈이 꽤 크면 은행 창구에서 입금 절차를 밟았다. 내겐 꽤 큰돈이었는데 집에서 이 은행까지 거리가 꽤 머니까 혹시나 불량배들을 만나 돈을 뜯기지는 않을까 늘 조마조마했었다. 언젠가 ATM이란 게 생기게 되면서 친절한 청원경찰아저씨가 현대식으로 기계를 이용해 돈을 입금하는 걸 가르쳐주셨고, 나는 이 기계에 돈을 넣으면 자동으로 지하에 깔린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창구에 있는 직원들에게 가는 걸까 신기해 했다. 한창 y2k 문제로 인해 yy-mm-dd 형식으로 찍히던 입출금 날짜는 어느 순간 yyyymmdd로 바뀌었고 이 때문에 오류가 발생해 정정 문구가 통장에 찍혀 있기도 했다.

 

조금 더 지나가면 곧 육교 삼거리가 나온다. 예비군 훈련장인 관동교장과 군부대로 진입하려면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하지만 우리 집으로 가려면 직진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한라아파트에 이주해 온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으니 여기서도 꽤 오랫동안 살았다. 처음에 왔을 땐 아파트 단지 내에 신호등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상가 거물에 미용실이 두 개가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잠깐 3년여동안 여길 떠나 안양역 근처에서 살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 곳은 이젠 너무나도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이젠 여기가 내 집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실히 든다. 집으로 올라오다보니, 아차 오늘은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집 앞에 모아놨던 쓰레기들을 죄다 가져가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캔과 병은 따로따로 그렇게 다 버렸다. 어렸을 때는 하지도 않았던 이 일들, 그래 사실 스물이 넘게 되니까 그제서야 이런 일들도 필요를 느껴 스스로 하고 있는 셈이지. 감상적인 시간들에 취해 있었는데 벌써 20살을 더 먹어버린 것을 직감하면서 다시 방으로 돌아와 앉았다.

 

2013년도 사실 얼마 안 남았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