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에는 특별하게 대한화학회에 참석했다. 우리 연구실은 전통적으로 매해 두번씩 고분자학회에 내일 참석 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게 대한화학회에 간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렸고, 교수님은 흔쾌히 승낙하셨다. 교수님도 일전에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성수도 화학부를 졸업하니까 언제 한번쯤은 화학회를 가봐야 되지 않겠냐고.


목요일 새벽부터 ktx를 타고 창원에 내려 왔다. 기차 안에서 쿨쿨 자다가 일어나니 어느새 창원중앙역이었고 택시를 타고 컨벤션센터에 도착했다. 사실 학회들이 크게 다른 건 없다. 사전등록을 했으니 접수처에서 등록을 하고 명찰을 받고 프로그램 북을 받은 뒤에 강연장에 가는 것.


익히 알려진대로 대한화학회의 고분자화학 분과가 매우 작은 규모였다. 그래서 고분자화학 분과 외의 다른 분과의 강연을 많이 듣고자 했다. 그럼에도 관심이 고분자화학 분과 강연에 쏠리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요즘 소각중성자산란(Small-Angle Neutron Scattering, SANS) 분광법이 주목받는 듯하다. 아마도 대전에 하나로 중성자가속기가 완공되어 관련 연구가 활발해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아참. water splitting 관련된 강연들은 꽤 재미있었고 앞으로도 주목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Sharpless 교수의 강연은...... 예상대로 난해했다.


대한화학회는 특이하게 첫날 학생 포스터 발표가 몰려있었고, 마지막날에는 학생 구두 발표가 몰려 있다. 나는 금요일 10시 10분 구두 발표 예정이라서 이날 일찍부터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ㅡ 세상에, 그 좋은 모텔방에서 혼자 편히 잤다. ㅡ 학회장으로 향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외국인 발표자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발표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늘 구두 발표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10분은 너무 짧다. 중간 쉬는 시간에 발표자들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고, 고분자화학 분과 책임이셨던 한양대학교 강영종 교수님께 인사드렸다. 구두 발표 끝날 때까지 고분자화학 분과 발표장인 605호를 떠나지 않았고, 12시 반 정도가 되어 학회의 모든 순서가 끝나게 되었다. 고분자학회에 비하면 매우 여유있게 학회가 진행되었는데, 고분자학회도 조금 더 규모를 키운 다음 2박3일로 진행하면 보다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회가 끝나고 난 뒤 751번 버스를 타고 진해로 갔다. 고모가 도착하기 전까지 제황산 공원에 올라가 좋은 날씨 속에 그림처럼 펼쳐진 진해시, 아니 이젠 진해구의 모습을 눈에 담고 내려왔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내게도 익숙한 이 곳. 산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너무 시원해서 일년계단 ㅡ 총 365개의 계단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ㅡ 을 오를 때 흘린 땀이 모두 씻겨내려갔다.


진해에 사시는 천애 고모와 함께 요양병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정말 오랜만에 뵈었다. 기력이 쇠하시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신 할머니께서 나를 알아보실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또 이렇게 가까이 할머니 모습을 뵈니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마음이 안 좋았다. 비슷한 상황에 처하신 외할아버지를 뵙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할머니는 아주 낮고 작은 목소리로 그래, 응 하고 대답하셨다. 나는 할머니 이마에 뽀뽀를 하고 작별인사를 드렸다.


이번에는 성혜 고모댁에 갔다. 마침 보민이 형 가족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다들 아파서 그런지 식사도 같이 못하고 헤어진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처음으로 고종질 셋을 함께 봤다. 영지 누나 혼인식 때 다들 뵈었지만 이렇게 또 기회가 되어 내려오게 되니 참 반가웠다. 다만, 큰아버지를 뵙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니 다소 기분이 어두워지긴 했다.


천애 고모께서 날 과히 후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창원에 학회 때문에 내려오긴 했지만, 오랜만에 친척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고 또 할머니를 뵙게 되니 참 기뻤다. 이제 예전 할머니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창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부산에 갔다가 갈 생각도 했지만 진해와 창원을 잠깐 더 돌아보고 가는 게 낫겠다. 사실 언제 또 이렇게 자유로운 학생의 신분으로 올 수 있을지 모를 일 아닌가.


아무튼 너무나도 기쁜 2박3일이다. 화학회에 혼자라도 갈 수 있게 해 주신 내 지도교수님께 무척 감사드리고, 또 강영종 교수님, 고모들에게도 감사드린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