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통장 잔고가 거대한 계곡을 그린 해였다. 큰 맘먹고 지른 올인원 PC를 비롯하여 올 한 해에는 굵직한 지출이 몇 번 있었다 ㅡ 그 중에는 우리 집의 여인들을 위한 선물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우리 가족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십일조는 이번 12월분만 제대로 내면 올 한해도 어김없이 매달 인건비의 10% 씩은 꼭 바친데다가 거기에 주정헌금을 합치면 내가 교회에 내는 돈이 1년에 150만원은 족히 넘는구나.


물론 뜻밖의 수입들도 있었다. 올해 초 학교에서 거의 차출되어 나가다시피 했던 출장의 여비같은 소소한 수입, 그리고 해외 출장 때 받은 여비가 약간씩 남았던 기억들 ㅡ 숙박시설을 호텔이 아닌 호스텔에서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처럼 원금도 보전 못하고 손해를 막심하게 봐 망한 줄 알았던 변액보험이 그나마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원래 60개월만 넣는 걸 목적으로 했었는데, 몇 개월 더 초과해서 겨우 수익을 낸 채로 마감할 수 있었다. 사실 계속 더 넣으면 이제는 주가연동이 아니고 공시이율에 따라 이자만 붙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건 내 계획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만일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면 매달 새로 붓는 돈 때문에 각종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월 지출을 조절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 성격에 안 맞는다. 목적 자체가 이 돈은 쓰지 말고 차곡차곡 모아만 두자는 것이었으니 손해가 안 난게 어디냐만, 그래도 5년이나 넣어뒀는데 고작 요것만 붙었다니.. 하는 약간의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 결과 2013년 12월의 통장 잔고는 2012년 12월 통장 잔고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 물론 새로이 적금과 펀드를 시작했기에 실제로 손에 쥐고 있는 돈은 이보다 적지만 말이다. 사실, 진작에 펀드나 변액보험 이런 거 하지 말고 내 성격대로 안전하게 적금이나 할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놈의 5%, 10% 이런 숫자놀음에 현혹되지 말고 그냥 안전하게 3% 대의 이자 받아 먹는 게 더 맘 편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것이지 암.


나는 '돈이 최고니까 돈을 무한정 많이 벌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돈은 무조건 아껴써서 남겨야지!' 하는 것도 아니다. 내 신조는 그렇다. 부족함 없이 벌고 또 부족함 없이 쓰자는 것. 사람이 돈벌이가 신통치 않으면 삶이 쪼들리고 궁핍한 것이 매우 볼품없어 지지만, 또 그렇다고 인색하게 굴면서 써야 할 큰 돈 쓰기를 임금님 용안 보듯 차마 못하는 것은 사람을 매우 찌질하고 쪼잔하게 만드는 것이다. 불법적으로 벌고 쓰지만 않는다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되도록 부요하게 소비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내가 직장을 가지게 되어 수입이 커지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만일 생긴다면 돈을 되도록 많이 남기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야겠지만, 매달 얼마 못 받는 대학원생이고 책임질 가족도 없는 현재의 내가 그런 걸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올 한해 씀씀이를 돌아보며 status quo(현상 유지)를 만족시킨 내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