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어제 이야기다. 어제 집에 돌아오니 12시가 넘었는지라 어차피 오늘 쓰나 내일 쓰나 '어제'라는 말로 시작하겠지 싶어서 그냥 시간이 더 지난 뒤인 지금에야 남기는 것이다. 이태원역에서 7시에 만났는데, 각자 출발이 조금 늦어지는 바람에 정확히는 7시 15분은 되어서야 만났다. 1년이 지나도록 머리를 펴지 않았다는 내 말에 진환이는 놀랐고, '너 살좀 찐 것 같다.' 라고 말하려는 나를 막아서며 '그런 얘기하면 화장실에서 두들겨 맞을 거야'라고 답했다.


HBC 라는 잘 모르는 고깃집 ㅡ 요즘 러시아어 키릴 문자 때문인지 저건 분명이 '에이치 비 씨'거나 '엔 베 에스'인데 자꾸 '엔 비 씨'라고 읽었다. ㅡ에 갔는데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고기를 먹고 만둣집에 가서 만두도 먹고 거기서 제공되는 칭다오 맥주도 마셨다. 나도 재즈클럽 때문에 이태원에 가끔 놀러오는 편이지만, 진환이는 회사원이다보니 이 근방에서 꽤 자주 먹고 마시는 듯 했다. 덕분에 아주 좋은 음식점 둘을 알았다.


작년에 보고 못 본 진환이는 내가 갑자기 보자고 하니 유학이라도 떠나는 줄 알았단다. 내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우리 보자!' 라고 말을 안 하던가. 하긴 그런 것 같다. 항상 나는 남들의 초대에 응대하기만 했지 정작 내가 누군가를 초청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갑자기 '우리 언제 볼 수 있을까?'라고 되뇌이던 사람들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조금 씁쓸해졌다. 최근에 고등학교에 방문했던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공유하는 것 중 하나인 고등학교 이야기를 잠깐 나눌 수 있었다. 그 때 진환이는 정말 열심히 오래 공부하기로 참 유별났지.


진환이는 회계사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늘 항상 생각해 왔지만, 그는 내가 가지지 못한 점들을 무척 많이 가지고 있었고, 이제는 내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 까지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회인이 되었다. 나이 스물 아홉이 되어 대화에 결혼과 정치가 끼는 것은 그 어떤 것들로도 막을 수가 없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그 '쿨한' 생각과 가끔은 날것의 냄새가 나더라도 듣고 곱씹어보면 참 속시원한 그의 논변은 언제나 나를 웃게 만든다. 그나저나 빨리 좋은 집안의 여자와 혼인을 해야 지금 하는 그 모든 고민들이 해결될텐데 말이다.


이태원에서의 짧은 만남을 끝마치고 우리는 삼각지역까지 걸어갔다. 생각해보니 진환이와 이태원에 왔던 것이 그가 입대하기 전인 2006년의 일이었다. 그 때 인도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고,우리는 녹사평 쪽으로 걸어내려와 전쟁기념관을 거쳐 삼각지역으로 갔다. 꼭 8년여가 지나서 나는 그길을 함께 걸었다. 진환이는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ㅡ 그리고 분명 그는 이런 생각들을 오글거린다며 집어치우라고 역정을 낼 게 뻔하지만 ㅡ 나는 진환이와 만날 때 참 즐거워서 좋다. 오히려 내가 그를 즐겁게 해주지 못하는 재미없는 nerd인 것같아 적잖이 미안스러울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