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우리 연구원에서는 모든 직원들에게 자기계발을 위해 1년에 50만원 정도를 지원하는데, 이 지원금을 가지고 (혹은 사비를 좀 더 보태서라도) 다양한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그 덕에 지난 3년간 영어회화 전화수업도 하고, 일본어 N3 수업도 내리 듣고, 오랜만에 스페인어 수업도 들어 보고, 페르시아어 수업도 들어서 익히고, 그리고 그 외에도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과 액세스, 애프터이펙트 수업도 들어 보았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저런 할 일이 많아져서 그랬는지, 딱히 무슨 강의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탓에 지난 상반기 동안에는 지원금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옆 센터에 있는 주용호 박사님 연구실과 함께 연구 아이디어를 나누게 되었고, 거기서 일하는 베트남 출신 박사후연구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안 그래도 이제 우리나라 대학원과 연구실에 한국인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동남아시아 출신 학생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베트남 출신 박사와 얘기하다보니 정작 내가 동남아시아 언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말레이시아어(Bahasa Maleyu)의 Apa khabar, Selamat petang 정도의 인삿말밖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새삼 놀랐다. 아니, 내가 이렇게 베트남어에 대해 아는 게 없었나? 가끔 베트남 쌀국수 먹으러 가기도 하는데. 게다가 내가 일하는 지역인 완주군에는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와 아르바이트생이 정말 많단 말이다! 이것저것 생각해보다가 이제 코로나19도 정리가 되는 판에 조만간 베트남에 여행이라도 가보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고, 얼마간 더 생각해 보다가 지난 6월 중순에 베트남어 강의를 신청했다. 


지난 금요일, 7월 1일에 문앞으로 인터넷 강의를 위해 참고할 교재가 도착했고 어젯밤부터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것이었다.

단숨에 성조와 자음, 모음을 익혔다. 책과 인터넷 강의에서는 주로 한국어 자음과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며 발음을 설명했지만, 나는 추가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각 문자가 나타내는 발음의 IPA 기호를 찾아봄으로서 애매함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중국어에서 자주 본 권설음(捲舌音)도 나타나고, 유기음(th)과 무기음(t)의 대립도 볼 수 있었다. g의 발음은 /k/나 /g/과는 다른 그리스어의 γ과 비슷한 /ɣ/이기에 좀 더 목을 잘 써야 한다는 것, s의 발음은 어떤 면에서는 러시아어의 ш와도 비슷하게 들릴 수 있겠다는 점, 스페인어의 ñ과 동일한 역할을 하는 nh와 더불어, 이탈리아어의 철자 표기법과 유사한 gh, ngh 까지. 뭔가 다른 언어들을 학습하고나서 베트남어의 발음과 표기를 보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어를 배운 바 있고, 형용사의 후치(後置) 형용도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이니 내일부터 틈틈이 배우게 될 내용들에 대한 왠지 모를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기왕 시작한 것, 페르시아어만큼은 빠른 시간 안에 독파해서 베트남 사람 앞에서 '이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좀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