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학교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인 진환이가 청첩장을 줄겸 간만에 밥도 같이 먹을 겸 학교를 찾은 것이다. 우연하게도 둘 다 서로 흰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도로에서 서로를 보자 마자 '아~' 하는 외마디 탄식스러운 비명이 쏟아졌다. 학교 밖으로 나가기엔 애매한 상황, 그래서 글로벌공학관의 한식당인 락구정에 가서 샤브샤브를 먹었다. 혼인을 앞둔 예비신랑들이 으레 그렇듯이 기대감과 걱정이 반 스푼씩 섞인 것 같은 복잡한 맛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앞으로의 계획,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식탁 위에 남아 있는 음식이 없어졌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오후 시간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새로 지어진 관정 도서관의 외관을 보고, 할리스커피에서 커피 한 잔씩 마셨다. 진환이는 새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할 맛이 나겠다고 연신 놀라워했는데 정확히 석달 전에 나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청첩장을 돌리느라 정신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을 그에게 헤어지기 전에 노란 봉투에 담긴 편지를 건넸다. 그 편지는 진환이가 군 복무 중일 때 부치려다가 시기를 놓쳐 보내지 못한 편지였다. 7년이나 지난 2015년, 편지봉투함에 담겨 있던 우체국 소인이 안 찍혀진 이 편지를 뒤늦게 발견했던 나는 오늘에야 이 편지를 원래 가야했던 주인의 품으로 떠나 보냈다. 사실 이 편지를 줄까 말까 고민도 했다. 사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남자와 남자 사이의 편지 교환이 어느 정도 용인(容認)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외의 시공간에서는 이것이 매우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그것이 전자메일이 아닌 손편지라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내용이라는 것이 7년 전의 상황에 그대로 멈춰 있는데 그걸 뒤늦게 들춰볼 때 시쳇말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같은' 기분은 또 어찌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래도 갈 것은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건네줬다. 내 생각에 진환이는 남자로부터 편지를 받은 게 어언 몇 년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서 통화나 대면이 어려웠던 친구들에게는 꼭 편지와 엽서를 써서 보냈다. 지금 편지함에 고이 모셔져 있는 여러 사람들의 편지는 대부분 내가 21~23살때 군인들과 주로 주고받았던 몇 안 되는 편지들이다. (이 시점에서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과거 연인들의 편지의 경우 헤어짐과 함께 대부분 소실되었다는 것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군인들의 편지에는 하나같이 걱정, 외로움의 정서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밖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었던 나는 위로와 평안을 간구하는 말들로 편짓글을 채웠다. 대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을 통해 긴밀한 교감(交感)을 나눌 수 있었다는 그 편지쓰기 및 읽기의 시간은 내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또 소중한 추억이었다. (이 시점에서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동일하고도 강렬한 경험은 역시 과거 연인들의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편지를 받아본 사람들은 과연 다들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대체로 다들 반겨줬고 답장을 꼭 보내주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진환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을 해 준 그에게 더 고마웠다. 혼인을 앞둔 시점에서 이제까지 별로 경험하지 못한 기분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하긴 서른에 편짓글을 보내는 남자사람친구는 내가 유일하겠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자주 써야겠다는 생각이 몹시 드는 날이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