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댁으로 옮겨온 지 사흘 정도 지나서 할머니의 TV 생활을 간단히 살펴보니 다음 두 열쇳말로 요약될 수 있었다: 드라마, 종편. TV를 즐기는 어른들에게 드라마는 빠질 수 없는 것이므로 논외로 하겠다. 다만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두 번째 단어인 '종편'이다.


나야 집에서 TV를 볼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방에 앉아 있으면 방문 너머에서 흘러 들어오는 TV 소리를 들으며 '아, 지금 뭘 보시는구나' 하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게다가 외할머니는 귀가 좀 안 좋으셔서 TV 음량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가끔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방 안에 라디오를 크게 켜놓았는지 귀를 의심할 때가 많다. 잠시 멈춰서 듣다보면 할머니가 시청하고 있는 채널이 TV조선 아니면 채널A임을 아주 손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종편 채널들의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이 실로 형편없다고 생각한다. 편향적인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기사의 질이나 깊이가 전혀 없다. 수준 미달의 패널들을 떼로 데려와서는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로 난장을 피운다. 컨텐츠가 없다보니 재탕, 삼탕이 반복되고 똑같은 말들만 모양새만 조금씩 달리하면서 되뇌이고 있다. 이런 패턴은 뉴스 프로그램뿐 아니라 교양 예능 프로그램, 특히 건강이나 상식에 관한 토크쇼 프로그램들에서 잘 드러난다. 종편의 건강 관련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이런 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왜곡되고 과장된 정보를 전달해도 괜찮나'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할머니의 수용 태도이다. 몇 번의 대화 끝에 내가 아주 손쉽고 단호하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바로 '할머니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조심스러운 결론을 말하자면 '할머니는 판단 능력을 상실하셨다.'는 것이다. 정보의 원천 자체가 왜곡되고 편향되어 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하시기 마련이겠거니 싶으나 상대방의 주장이나 의견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무엇이든지 새누리당이 옳으며 박근혜가 잘하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이런 반응과 주장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과연 이북에서 주체 사상에 입각한 일당 독재 체제라는 포악한 정체(政體)가 한민족에게 잘 먹혀들어갈만 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면, 외할머니는 그런 생각을 늘 품고 계시기 때문에 TV조선의 뉴스만 시청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상파 채널 뉴스는 중립적이고, JTBC 뉴스는 본인 듣기에 껄끄러운 '빨갱이' 소리만 지껄이고 있느 최악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TV조선 뉴스는 할머니의 생각을 정당화해주는 갖가지 기사와 논설들로 뒤엄벅되어있기에 할머니가 한술 받아 떠 넘기기에 너무나도 달콤하고 고소하며 얼큰한 것이다. (다만 내 혀에서는 상한 맛만 날뿐이다.)


이런 거대한 세대의 벽을 실감하노라면 사실 절망적이다. 심지어 최근 할머니는 내게 '빨갱이'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빈정대시기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허허, 내가 빨갱이라니. 그런 빨갱이라면 '새빨갱이'라도 되어도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