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썼어야 할 글이지만, 일요일에 너무 피곤해서 밤 8시가 되어 집에서 곯아 떨어져 자게 되었으므로... 이틀이 지난 오늘에서야 DELE 시험 응시 후기를 남긴다.


토요일에 있었던 독해, 청해, 작문 시험은 오전 9시부터 시작이었고 입실은 30분전부터 가능했다. 올해부터 DELE 시험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보게 되었고, 제시간에 맞추어 가려고  6시에 일어나 7시 10분쯤에 출발했다. 그나마 집이 서울대입구라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 혹은 서울역까지 가서 1호선을 타면 1시간 15분 정도 걸리는 것이었지, 만일 이날까지 계속 안양에서 지냈다면 시험 치러 가는데 족히 2시간은 걸렸을 것 같다. 가는 동안 단어장이나 작문 예문을 보며 공부라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이게 웬걸. 일찌감치 앉은 자리에서 졸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이른 시간에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기에...


2주 전에 봤던 IELTS 시험 응시자의 평균 연령은 20대 후반 정도였는데, DELE 시험 응시자의 평균 연령은 20대 초반 정도인 듯했다. 특히 부모님과 같이 온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 내 나이의 절반 정도 되겠군. ― 아마도 외고 및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인 듯 했다. 어찌나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던지 역시 애들은 못말린다. 응시자 대부분은 B1, B2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해당 레벨 성적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가산점을 주고, 스페인어학 관련 학부 학생들에게는 졸업시험을 면제시켜주는 이점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이번에 응시한 A2 시험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총 120명 정도가 응시했는데 대구의 스페인문화원에서 응시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대략 200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DELE 시험은 서울과 대구에서만 치러진다.)


스페인어 원어민들이 시험 감독 및 안내 등을 하는데 살라망카 대학에서 수업을 듣던 이후 참 오랜만에 그런 기분을 느꼈다. 독해는 60분, 청해는 35분, 그리고 약 30분간의 쉬는 시간 이후에 작문 50분 시험. 그렇게 해서 약 3시간의 첫날 시험이 종료되었다. 독해는 비교적 자신 있는 파트라서 크게 고생하지는 않았으나, 청해가 생각보다 까다롭게 나와서 당황했다. 그리고 작문은 지난 IELTS 시험에서 치를 때 실수했던 것처럼 시간 안배 및 글 길이 조절에서 낭패를 맛보았다. 시험이 끝나고 조용히 난이도와 예상 점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20대 이상의 응시자들과는 달리 10대 청소년들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또 우르르 몰려서 재잘대며 시험에 관해 입방아를 아주 시끄럽게 찧어댔는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이번 청해나 작문은 예상 외의 형태로 나왔던 듯 싶다. 특히 마지막 작문의 경우 문제를 제대로 해석 못해서 엉뚱한 글짓기를 할 가능성마저 제기되었다.


회화 시험은 다음날인 일요일 오전 9시에 있었다. 그런데 이 회화 시험 시간은 응시자마다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토요일 2시에 치르고, 어떤 사람은 일요일 오전 10시에, 또 어떤 사람은 일요일 오후 4시에 치른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모르겠으나 오전 9시에 시험 시간이 잡히는 바람에 다행히 회화 시험을 마치고 교회에 가서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리고 그 뒤에 예정된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을 그르치지 않게끔 시험 시간이 정해진 것에 감사해야 했으나, 몸은 전혀 그러하지 못했다. 전날도 6시에 일어나느라 꽤 힘들었는데, 이날도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시험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으니...


DELE 회화 시험의 경우 시험 시작 15분 전에 준비실에 모여 회화 시험 준비를 한다. 시험관 앞에서 말할 말하기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게 말할 내용의 개요를 종이에 필기하는데 주어진 시간이 바로 그 준비 시간 15분. DELE 회화 시험은 총 4개의 과제인데 첫번째는 혼자 말하기(독백), 두번째는 사진 설명하기, 세번째는 롤플레이, 네번째는 간단한 토론이다. 혼자 말하기의 주제를 '음악 콘서트'로 잡은 나는 재즈 이야기와 샤키라 이야기를 했고, 사진 설명할 때에는 시험관도 간과했을 만한 점들까지 집어서 이야기를 했다. 각각 3~4분 및 2~3분 소요를 원칙으로 하는데 시간이 모자르거나 남지는 않았던 듯하다. 중간중간 말하면서 문법에 어긋날 것 같으면 다시 고쳐 말하곤 했는데, 영어만큼 익숙하지 않다보니 문법이나 단어가 가끔 엇나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롤플레이까지는 괜찮았는데, 네번째 과제인 토론은 사실 잘 못했다. 내가 A를 주장하면 시험관은 not A를 주장하는 사람이 되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것인데 주어진 토론 주제에 대해서 정작 내 실제 주장이 시험관의 not A였기 때문에 도무지 A를 주장하는 역할에 생각과 감정을 이입하기 매우 힘들었다. 네번째 토론 주제에 관해서는 시험관 앞에서 즉석으로 정하는 것인지라 시험 시작 전 15분 동안 준비가 애초에 불가능했고, 그러니 원래 순발력이 없으면 힘든 시험인 줄은 진즉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날 당황하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튼 구두 시험은 순식간에 끝났고, 나는 gracias와 hasta luego를 연발하며 시험장을 나왔다.


DELE 시험 결과는 약 2달 반 정도 뒤인 8월 초중순에 나올 예정이다. 응시한 날짜로부터 13일만에 결과를 통보하는 IELTS에 비하면 심각하게 느린 것이다. 나는 조금 빨리 받아보고 싶은데 뭐 어쩔 수가 없다. 청해 시험 점수만 이상하게 나오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A2 레벨 인증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또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지난 5달 동안 매주 조금씩 시간을 투자해서 이날까지 시험을 준비해왔는데, 좋은 성적을 거두어 훗날의 B 레벨 시험에 도전하는 발판이 든든히 마련되길 바랄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