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에 유희열 前 과기부 차관이 KIST 전북에 방문하여 1시간 동안 강의를 진행하셨다. 강의 스타일은 '아는 선배 목사님 초청해서 진행하는 오후 예배 설교'와 비슷했다 ㅡ 뭔가 본문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이야기를 치밀한 구조 없이 나열하며 이야기하다가 시간이 다 되어서 서둘러 마치는... 게다가 47년에 태어나신 어르신이 과학기술에 따른 변화와 MZ세대가 바꿔나가는 시대상을 얘기한다..? 처음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강의가 시작되고 중반 이후가 되면서 무척 놀랐다. 일견 고루해보이는 강의 스타일과는 달리, 그 내용은 젊은 학생조차 잘 모르는 최신의 내용들로 업데이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 70이 훌쩍 넘으신 어르신이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수많은 정보들을 입수하고 소화하셨음을 상상해 보니 그 어떤 분보다도 진취적인 어르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메모장에 휘갈겨놓은 것들을 곱씹어보니 예상보다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시간이었다.


그 많은 사례들 중에서 특별히 놀라웠던 것은 바로 네덜란드의 농산물 수출액이었다. 초우량 농업대국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대국이 어디인가? 나는 브라질을 생각했는데 그와 엎치락 뒤치락하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게 네덜란드였다. 아니,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은 땅에서 그렇게나 많은 농산물을 수출한다고? 집에 돌아와서 검색해보니 과연 그러했다. 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요소들이 있었는데, 크게 세 가지를 꼽자면 로테르담과 같은 거대 항구도시가 있어 수출이 유리하다는 점, 농업기술 혁신 덕택에 면적 대비 생산성이 그 어떤 나라들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 그리고 기업농업 형태로 운영된다는 점이었다. 특히 생산성 부분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는데, 토마토의 경우 네덜란드 재배 면적이 대한민국에 비해 3-4배 작지만, 생산성은 무려 9배나 높아 오히려 더 풍요로운 수확이 가능하다는 사실. 게다가 그런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물 사용량은 현저히 적어 농업에 의한 물 고갈 및 환경 파괴 문제를 최소화한다는 게 경이로웠다.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특집기사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양곡관리법 논쟁이 먼저 떠올랐다. 올해 이 지역에는 남아도는 쌀은 어떻게든 정부가 사야한다는 소리가 들끓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주장 어느 곳에서도 생산성을 위한 기술 혁신, 그리고 기업가 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경제논리는 고려하지 않고 내 생계 책임지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다수의 영세한 자경농민(自耕農民) 환경에선 경쟁으로 대표되는 시장경제의 원칙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아하니 머리에 띠를 두르고 지원책을 요구하는 농부들도 5-60대가 훌쩍 넘은바 20년 후에는 논밭을 갈 한국인이 사실상 없어질 것 같은데, 이들은 과연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가? 마치 안전운임제를 요구하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20년 뒤에는 아마 쌀이나 사과는 삼성 제품을, 보리와 배는 LG제품을, 콩은 현대 제품을... 뭐 이렇게 기업농업 생산품을 사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농산물 가격은 20년 뒤가 더 쌀 것이다 ㅡ 생산성과 유통 문제가 해결되니까.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농업 환경의 전환이 불가능하다. 경자유전(耕者有田)으로 대표되는 헌법 121조 때문인데,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이 농업에 뛰어들기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해방 이후 농업질서를 바로세워야 했을 제헌국회 시기 때에나 유효했을 법한 이 조문의 개정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의 먹거리가 대기업의 경쟁 논리에 휘말린다든지, 신(新) 소작농의 출현이라든지 하며 이러한 변화에 반대하는 의견도 거셀 것이지만, 세계 정세와 기후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요즘, 이런 논리에 묶여 식량 자급이나 경쟁력 확보의 기회를 놓친다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더 큰 낭패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