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소재기술 연구과제 발표평가가 있어서 교수님 대신 대전에 있는 한국연구재단 대전청사로 내려온 게 어제였다. 뉴로모픽 시냅스 기반 소자 개발이라는 문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연구주제에 참여하게 되어 몇 차례의 자료 제작 미팅 및 과제 제안서 제작을 하며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게 된 것도 참 신기한 일이지만 이렇게 대전까지 내려와 교수님들의 발표평가 자리에 처음 참여한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발표평가 시간 직전에 고분자 패턴에 대한 의견 및 질의가 있어서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고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 혹은 회피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발표평가 자리에는 동석자가 세 명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나는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약 45분 정도의 발표평가를 마치고 로비로 나온 교수님들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고, 좋은 소식을 함께 기다리자는 인사와 함께 자리는 파했다.


그길로 나는 둔산동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정민이를 보았다. 거의 평균 1년 반에 한번씩 보는 것 같은데 한의사 인턴이 거의 끝나가는 정민이는 여전히 격무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수년 전보다는 확실히 더 여유로워졌고 안정적이다. 원래 힘든 삶도 몇 년 하다보면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일반이다. 스페인 음식점에서 파에야와 타코를 몇 개 먹었고, 자리를 옮겨 칵테일도 한두잔씩 주문에서 털어 넣었다. 충남대 근처는 기말고사 직전 마지막 불금을 불사르려는 어린 아이들로 가득했는데, 확실히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의 대학생들은 더더욱 어려보인다.


매해 대전에서 봄 고분자학회를 할 때마다 묵는 삼호자객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인 오늘, 이른 점심에 학부 동기이자 실험실 동기 및 졸업생인 이랑이를 만났다. 최근에 차를 구입했다는 이랑이는 나를 픽업하러 을지대병원까지 나와주었고 우리는 죽동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가서 푸성귀가 한가득 올라간 샐러드와 피자를 먹었다.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 일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사실 우리 동기들이 서로 만날 일은 이렇게 출장을 오가거나 할 때밖에 없다. 결혼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핑계로 서로 만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으나,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다시피 우리 화학부 05학번 중에 연내에 결혼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별로 없는지라...


대전에 올라가는 기차표는 한 번 취소한 뒤 10분 정도 늦게 출발하는 편으로 다시 샀다. 수수료 2,400원이 들긴 했으나 뭐 기차를 놓쳐서 삯을 죄다 날린 것보다야 낫지. 서울로 올라가면 바로 집에 들어가서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 교회 동기인 종한이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 그뿐인가. 저녁 약속이 갑작스럽게 생겨서 거기에도 가야한다. 옷은 언제 갈아입지? 내일 찬양 감사성찬례를 인도해야 해서 그것도 준비해야 하는데, 그리고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입어야 하는데...


일단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련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