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聖公會) 교회에서는 전례곡이 매주일 울려퍼지는데 이는 거의 매일마다 복음성가(福音聖歌)가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다른 개신교(改新敎) 교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바꾸어 말하면 성공회 교회에서는 복음성가가 불리는 일이 흔치 않다. 그나마 내가 섬기고 있는 안양교회에서는 전임 관할 사제셨던 미카엘 신부님의 의지로 복음성가로 진행되는 찬양기도회가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고 있고, 이번에 부임하신 마가 신부님의 의지로 매달 한 번씩은 찬양으로 드리는 감사성찬례가 봉헌되므로 성공회 안양교회는 주변의 그 어떤 성공회 교회보다 복음성가를 많이 부르는 교회일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성공회 교인들은 나이 불문하고 대체로 복음성가에 익숙하지 않다. 영국에서 온 전례주의자(典禮主義者)들로부터 전래되었던 대한성공회는 교회에서 기타와 드럼을 치며 신나게 찬양하는 것을 지양하는 분위기로 발전해 나가지 않았던가. 손을 들고 찬양하거나 박수를 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는 한 젊은 성도의 고백은 나로 하여금 지난 십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머리에 명확하게 새겨진 개신교회의 찬양기도회 장면을 성공회 교회에 이식(移植)시키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단번에 느끼게 하였다. 이미 20여년 전에 세상에 알려져 회중(會衆)들 사이에서 불리고 불리기를 십수년 해온 소위 '지나간 복음성가'조차도 생소해 하는 마당에 통성 기도를 하고 박수를 치며 주님의 이름을 삼창(三唱)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처음에는 성공회 교인들에게 새로운 찬양을 열심히 소개하는 중개수입업자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찬양기도회라는 신문물(新文物)을 받아들이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좋은 것을 어찌 모르고 지나간단 말이오? 그런데 그 열의도 잠시, '새로운 찬양이 너무 많아 오히려 은혜가 되지 못할 수 있다'라고 조심스레 의견을 표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접하게 되었다. 아니, 새로운 찬양을 배우면 되지, 언제까지 80년대 복음성가 수준에서 머무를 것인가? 매번 아는 찬양만 부르다가는 외연이 넓어지기는커녕 점차 오그라들어 압사당하지는 않겠는가? 너무 단조롭고 변화가 없는 찬양은 뜨겁지 않겠는가? 그리다가 그 명현(瞑眩)했던 찰나(刹那)의 순간에 나는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아, 이것은 진실로 문화(文化)의 충돌이다. 문화가 다르다. 교회의 문화, 양식이 정말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충돌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어느 하나를 틀렸다고 간주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적인 공존(共存)! 이것이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했을 때 가장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갈등의 순간을 해소하는 묘안(妙案)이다.


현대 기독교의 찬양기도회의 원류는 미국의 부흥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최근 찬양기도회는 오순절교회, 그리고 초교파적 성령운동에서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 교파 혹은 운동이 성공회의 가르침이나 지향과 절대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찬양기도회 때 인도자들이 외칠 수 있는 말이나 기도 내용은 가끔 성공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상당히 문제가 될만한 것들이 여럿 있다 ― 예를 들면 성령을 부어달라, 성령님이 오라고 주문하는 것이라든지. 그리고 일반적으로 성령 운동 자체가 신자들의 신앙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함정이나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신자들을 위한 어떠한 지침이 마련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성공회가 자랑하는 전례 중심적인 기도와 묵상 가운데 이와 같은 복음성가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경우 큰 파급 효과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찬양은 사람의 마음을 모으고 또 고양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수입하여 들여온 신문물을 맛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회가 가지고 있는 자산에 찬양기도회의 정신과 양식을 접목시켜 발전적으로 진화시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써놓고 보니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같군.]


아무튼 새로운 찬양, 새로운 방식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치면 나는 성공회 고유의 전통에 대해 아직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러니 어느 것이 우월하다, 어느 것이 세련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떤 것이 성도들의 신앙 고양에 더 유익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나도 그래서 찬양 곡 목록을 수정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성도들이 잘 알만한, 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메시지를 품고 있는 찬양들을 열심히 찾아보면서.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