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짧은 1박2일 통영, 거제 나들이(?)를 했다. 6월에 처음 계획하기로는, 7월 둘째주말에 어머니와 함께 셋이서 진해에 내려가 고모를 만나뵌 뒤 거제도와 통영에서 각각 하루를 보내고 특히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외도에 가는 것이었데, 외할머니의 갑작스런 입원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여행을 취소할까 했는데, 셋째 고모가 어렵사리 휴가를 얻었다는 말에 나와 아버지만이라도 여행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나와 아버지는 서로 번갈아가며 고속도로를 달려 진해에 이르렀고, 간만에 뵙는 셋째 고모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나는 수박과 망고를 실컷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로 거제도로 향했다. 진해 용원에서 거제도를 가기 위해서는 예전 같으면 배를 타야했지만, 거가대교 덕분에 거제도는 이제 육로를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동네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자동차 도로 터널이라고 하는 가덕해저터널을 지나니 중죽도와 저도를 지나 거제도로 직접 연결되는 거대한 규모의 사장교인 거가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가대교를 지나 도착한 거제도 북부는 아직 개발이 덜 된 어촌 부락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잠시 내린 곳은 구영이라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버려진 페리 선착장, 작고 고요하기만 한 해수욕장, 그리고 귀엽지만 쓸쓸한 구석이 있는 작은 마을, 참 신기한 광경들로 가득한 어촌이었다. 산을 넘어 농소라는 동네로 넘어가기 전, 구릉 위에서 해풍을 맞으며 바라본 이 바닷가 작은 마을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진해로 돌아와서 우리 셋은 횟집에 들어가 모듬회를 실컷 먹었다. 부산이나 창원 등지의 횟집에서는 수도권의 횟집에서와는 달리 군더더기 없이 마구 썰어놓은 회들이 접시 한가득 담겨 나온다. 쓸데없는 반찬이 시식자의 미각을 흐트러뜨리는 일이 없으니 우리는 온전히 회에만 집중할 수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남해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이자 호사이다. 밥을 다 먹은 뒤 아버지는 친구분을 만나 커피 타임을 가지기로 하셨고, 나와 고모는 용원 앞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공원을 잠시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돌아온 세 사람은 TV를 보다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유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진첩을 구경했는데, 그야말로 수십년 전의 사진들이 한가득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할아버지께서 일제강점기 시절 보통학교를 다닐 때 받았던 상장 ― 그 낡고 바랜 문서에 쓰여있는 쇼와(昭和) 10년이라는 글자는 이것이 무려 81년전에 수여된 상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 부터 시작하여 상경하여 고등학교를 다니시던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이후 국민학교 교사로 근속하셨던 할아버지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자매들 모습, 그리고 나를 포함한 그들의 자녀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었다. 특히 사진첩을 넘기다가 발견한 한 사진에는 내 과거(혹은 현재)와 너무나도 흡사한 아버지의 과거 모습이 담겨 있어 나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게 1978년에 아버지의 고등학교 졸업을 기념하여 찍은 사진인데 말이다!


여유 있게 일어난 다음날에는 고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 똑같이 거가대교를 타고 거제시로 들어간 뒤 그대로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은 내가 늘 항상 가고 싶어했던 동네였는데, 비록 여름철이라서 그 맛난 굴을 맛볼 수는 없었으나 짧은 여행 시간동안 이 동네의 상징과도 같은 충무김밥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바라본 통영 주변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워 날이 맑고 좋을 때 한 번 더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한산도쪽을 바라보니 바로 400여년전 치열한 해전이 벌어진 곳이 한 눈에 펼쳐졌고, 해무에 살짝 가려진 마치 산처럼 생긴 주변 섬들과 그 섬들 사이를 가득 메운 남해,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지나가는 배들을 보노라니 이곳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운 항구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편 통영은 과거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자리였고, 따라서 이순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도시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배를 타고 한산도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고, 다만 과거 통제영이 있었던 곳을 방문할 시간은 있었다. 불행히도 통제영의 본관 건물에 해당하는 세병관이 복원 공사 중이라 제대로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일제가 허물었던 조선 수군의 흔적을 열심히 되살리고 있다고 하니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통영을 다시 찾을 때에는 세병관이 모든 단장을 마치고 세상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일 테니 그때는 꼭 온전한 모습을 두눈에 담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짧은 통영, 거제 나들이가 끝났다. 사실 통영에 더 머무를 수 있었지만, 폭염특보가 울려퍼진 7월 9일은 습도 높은 해안 도시를 구석구석 관광하기엔 부적절한 날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이른 귀가를 제의했고, 나나 아버지나 다음날 아침부터 또다른 일정들이 있었기에 나는 흔쾌히 '콜'을 외쳤다. 비록 짧은 나들이었지만, 아버지와 그래도 오랜만에 오래 붙어다니면서 이야기도 하고 먹을 것도 맛나게 먹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