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틀간 너무나도 정신이 없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9월 1일에 진행된 이사였으므로 그것을 중심으로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이미 Ellison 교수님에게 내가 9월 1일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언급했기에 나는 이날 여유 있게 일어나 호텔 체크아웃을 한 뒤 1년 계약을 했던 집 Edge on Oak로 향했다. 아침부터 건물이 부산스러운 것이 새학기를 앞두고 이주하는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이 많은 것 같았다. 프론트에 가서 이름을 말하고 내 방번호를 말하니 전기회사 및 가스회사 회원 번호를 말해달란다. 아뿔싸, 핸드폰을 개통하자마자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생각해놓고서는 정작 핸드폰 개통 뒤에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건물 1층 어딘가에서 쭈그리고 앉아 두 회사에 각각 전화를 걸어 내 신상정보와 이주할 건물 정보에 대해 상세히 말한 다음 회원 번호를 받아낼 수 있었다. 사실 음질이 그렇게 좋지 않은 전화상으로 영어를 듣고 대화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그래도 결국 우여곡절 끝에 성공했다 ㅡ 중간에 바보같은 답변을 한 적도 있었다. 참고로 미국은 전기 및 가스 산업이 모두 민영 기업에서 처리하며 Edge on Oak에서는 수도와 인터넷은 건물주(회사)가 대납해주지만 전기와 가스는 세입자의 몫이라서 개인적으로 이와 같이 회원 번호를 받아서 제출해야만 했다.


아무튼 그렇게 회원 번호를 제출하니 내게 건물 현관 열쇠 및 집 문 열쇠를 주었고, 주변 식당 정보 등 여러가지 정보들이 함께 적힌 책자도 함께 건네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자 모던하고도 깔끔한 복도, 그리고 에어컨으로 인해 서늘해진 공기. 모든 것이 참 낯설지만 기분 좋았다.


그리고 내 집! 약 670 ft2 이니까 평수로 치면 대략 18평인 원 베드룸(1 BR)이다. 방 구조는 거실과 주방이 연결된 거대한 공간에 침실이 딸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방이 상상을 초월할만큼 컸다. 인조대리석으로 마감된 ㄱ자 모양의 부엌. 대용량의 냉장고와 타이머 조절이 가능한 인덕션, 그리고 그 밑에는 오븐. 음식물 쓰레기 분쇄하는 기기도 설치되어 있는 넓고 깊은 싱크대. 혼자 요리해서 먹고 살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한, 오히려 너무 과분한 주방이었다. 거실에는 푹신한 소파가 있었고 콘솔과 커피 테이블도 있었다. TV가 없는 거실은 약간 어색했지만, 현재로서는 TV 를 구매할 생각이 없으므로 일단 거실은 이렇게 여백을 충분히 둔 상태로 둘 예정이다.


카펫으로 바닥 처리가 되어 있는 침실에는 더블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고 구석에 작은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새로 배송된 인터넷 라우터 및 노트북을 연결하여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침실에는 드레스룸이 하나 딸려 있는데, 크기가 또 엄청 커서 내가 입을 여름옷, 겨울옷을 다 넣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일단 전체적으로 혼자 사는 내게 너무나도 과분하게 넓고 쾌적하고 좋은 집이었다. 이렇게 멋진 집이 내가 혼자 살아갈 집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던 나는 1층에 내려가서 프론트에 앉아 있는 매니저에게 '원 베드룸에 혼자 사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는 않지? 그렇지?'하고 물어볼 정도였다. 커플이 주로 살지만 혼자 사는 경우가 이상한 건 아니라는 매니저의 답. 이 건물 스튜디오 ㅡ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원룸 ㅡ 월세 비용이 원 베드룸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원 베드룸을 선뜻 신청한 것이긴 했지만, 아무튼 참 민망할 정도로 과분하다.


실험실의 하헌주 박사님 덕분에 이날 IKEA와 CostCo를 돌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많이 살 수 있었다. 주방용품, 욕실용품, 쓰레기통, 침대 커버 및 베개, 헤어 드라이어 등등... 거의 $700 가 순식간에 소모되었는데, 서울 원룸으로 이사갈 때의 지출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예상된 금액이긴 했다. 당시에는 안양 집에서 물건을 쉽게 가져올 수도 있었고, 실제로 부모님이 다양한 물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셨기 때문에 새 살림을 차릴 때 굳이 새로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러나 여기는 사정이 다른게 필요한 물건을 한국에서 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니 웬만한 것들은 여기서 다 사야했고 그래서 지출이 더 커졌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고 이번 주말 내내 필요한 물건이 뭔지 잘 생각해두고 적어 두었다가 쇼핑을 하러 시내로, 그리고 Mall of America ㅡ 미니애폴리스 공항 근처에 있는 대형 몰인데 미국에서 손꼽히는 규모라고 한다. ㅡ 로 나가야 한다. 그러니 지출은 조금 더 커지겠지만, 식료품을 제외한 이주 물품들을 구매하는 것에 $1,000 이상을 쓸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미네소타 대학에서 행정 처리도 이제 막바지를 향하여 달려 가고 있고, 이사도 잘 진행되었으며 여기서 진행해야 할 연구 주제들도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미니애폴리스에 온지 열흘이 된 지금, 이제 정말이지 미네소타 대학의 박사후연구원으로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