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그야말로 '개처럼' 일하고 있다. 아침 8시경에 출근하면 메일 및 기타 사항을 확인한 뒤 바로 실험실로 달려가 실험을 시작/속개/종결한다. 나를 멘붕에 빠뜨린 콩기름 실험도 최근에 재개했는데 화학자로서의 엄밀한 순수성을 조금 포기하고 정제 과정을 눈 딱 감고 건너 뛰자 다시 싸이올(thiol)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지금같은 속도면 이 일은 아마 한달 안에 정리될 것 같다.


한편 랜덤공중합체를 합성하는 일을 지난달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데, 박사과정동안 합성한 것이라고는 산화 그래핀(graphene oxide)밖에 없는 온갖 단량체들을 부어넣으며 흰 고분자 가루들을 매일같이 얻어내고 있다. 박사과정 연구실에서 내가 이런 고분자들을 합성한다는 사실을 알면 꽤나 놀라워할 것이다. 사실 합성 과정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합성 실험을 위한 준비 과정과 침전 및 여과 과정이 굉장히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다. 메탄올에 고분자 용액을 뚝뚝 떨어뜨리면 하얀 우유같은 액체가 생기는데 이것을 종이 필터로 여과하고 다시 이것을 녹인 다음 다시 메탄올에 떨어뜨리고...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는 것이 오소독스-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 귀찮더라도) 철저하게 이행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하루에 세 개의 합성 실험을 교대로 진행하고 나면 그야말로 기진맥진 상태가 되고 만다.


이번주 화요일에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의 화공과에서 굉장히 유명한 Grant Wilson 교수가 미네소타 대학을 방문했고, 그의 세미나를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블록공중합체 관련 프로젝트는 Wilson 교수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내 고용주 되시는 Ellison 교수가 말하길 Wilson 교수는 내가 이룬 진전(?)에 굉장히 흥미로워 한다고 했다. 어라, 이랬다가 갑자기 아닌 걸로 밝혀져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확실한 것은, 걱정과 좌절감으로 점철된 1,2월에 비하면 3월은 매우 쾌청한 편이다. 오랜만에 활기와 열의를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고, 무언가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무슨 시시포스(Σισυφος)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적어도 시시포스와는 달리 내게는 '배우는 것' 혹은 '남는 것

이 있으니 손해 보는 돌 옮기기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또 이렇게 쾌속열차를 달리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급정거할지도 모르지만, 뭐 그것도 어쩌겠나, 연구자의 삶이 뭐 그런 것이려니 해야겠지. 다시 말하자면, 양자 역학에서나 나올 법한 불연속성은 내 삶에서도 여실히 확인 가능한 인자인 셈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험하느라 자리에 제대로 앉지도 못했으니, 의자에 편히 앉아 영화나 한 편 보고 잠에 들어야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