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와 달리 굉장히 궂은 날씨였지만 굳은 마음을 가지고 꿋꿋하게 옆 도시이자 미네소타 주의 주도(州都)인 세인트폴(St. Paul)에 갔다. 이전부터 이 동네를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무모한(?) 여행을 감행한 것이다. 감사성찬례를 마치고나서 곧바로 그린 라인(Green Line) 경전철을 타고 미니애폴리스 시내에서부터 2~30분 정도 달려 세인트폴 시내 구역의 시작점인 Capitol/Rice St. 역에 도착했고, 거기서 내려 잰걸음으로 주정부 건물과 의회 건물을 지나 세인트폴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허기가 조금 느껴져서 곧바로 미시시피 강 쪽으로 걸어내려가 간단히 점심으로 멕시코 스타일의 간단한 식사인 우에보스 란체로스(huevos rancheros)를 먹었고, 그리고나서 나는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미네소타 과학 박물관에 들어섰다!


미네소타 과학 박물관은 그렇게 큰 규모의 전시관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서울에 있는 서울특별시교육청과학전시관이 훨씬 크고 전시품도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서울의 과학 박물관에는 어렸을 때, 그리고 조금 커서 가 본 적이 있었다. 또 어딜 갔었나, 아, 여의도에 있는 LG화학 과학전시관에 중학생 때 방학숙제하러 간 적이 있었다. 아참, 대전에서 EXPO가 한창일 때 꿈돌이를 보러 간 적도 있었구나. 잠깐 해외로 눈을 돌리면, 보스턴에 있는 과학 박물관에는 4년 전쯤에 가봤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의 그리피스 천문대는 박물관은 아니지만 천문 및 지구에 관련된 훌륭한 전시품들을 여럿 진열했었던 기억이 난다 ― 그리고 이런 류의 전시품 중에는 항상 푸코의 진자가 빠지질 않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전시의 규모나 주제의 다양성으로 따지면 미네소타 과학 박물관은 국내외에 산재한 내로라할 과학 박물관에 비하자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번 미네소타 과학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적지 않은 (긍정적인) 충격을 받게 되었고 이런 과학 전시관의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과학인듯 과학아닌 과학같은' 전시 형태가 굉장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과학적 배경 지식이 충분한 사람은 여기에 전시된 전시품들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정확하게 잘 알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이 사실 관심이 없다. 단지, 자신들이 어떤 버튼을 누르면 불이 번쩍이고, 레버를 돌리면 공이 쪼르르 굴러가고, 자신들의 움직임을 촬영하고 다시 보는 것 뭐 그런것들에만 열중할 뿐이다. 아무리 이 아이들에게 '중력장은 시공간을 왜곡시킨답니다.', '서로 다른 진동수를 가진 조화 진동자의 진동 형태를 리사주(Lissajous) 곡선으로 그려낼 수 있어요.' 따위의 내용을 일러주어봐야 관심도 없고 또 애초에 이해할 수도 없다. (솔직히 이런 내용을 아동들이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없다!)


어찌보면 과학 박물관의 역할은 그런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고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과학 박물관의 역할이란 다양한 과학적 사실을 아이들에게 손쉽게 '경험'시켜주는 것에 있지 아닐까. 내가 미네소타 과학 박물관에서 본 아이들은 그저 여기저기 어지럽게 돌아다니면서 버튼을 누르고 물건을 여기저기 옮기고 분해했다가 조립했다가 레버를 이쪽으로 돌리고 저쪽으로 돌리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물론 그 아이들이 그런 조잡한 행동들을 통해 배우는 특정한 과학적 지식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조작 가운데 아이들도 과학적인 뭔가를 경험하고 깨닫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소에 무거운 물체를 중심에 가까운 곳에 두고 가벼운 물체를 중심에서 반대쪽으로 먼 곳에 두었더니 평형을 맞출 수 있었던 경험을 한 아이는 분명 지레의 원리같은 것은 배우지 않았음에도 대강 어떠한 비밀이 있다는 것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그런 '뭔지 정확히는 잘 몰라도 그러하더라'라는 경험!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전문 과학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과학이란 늘상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뭔지 정확히는 잘 몰라도 그러하더라.'


사실 세상 만사 자연 현상 및 인공적인 공정의 모든 것들이 다 과학의 법칙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과학적 원리에 입각해서 설명해주면 설명해주는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아이들이나 고역이 따로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과학적 원리를 다 완전하게 이해할 필요조차 없다. 단지 중요한 것은 다양하게 경험을 한 아이들 중 몇몇은 분명히 '뭔지 정확히는 잘 몰라도 그러하더라.'라는 수준을 넘어서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될 수 있는 진로(進路)를 열어주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 아이들은 나중에 교과서를 통해 배울 과학적 지식들을 과거 자신들의 경험에 연결시킬 기회를 갖게 될 것이고 거기서 흥미를 느끼게 되면 계속 과학을 연구할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과학 박물관의 소임을 제대로 한 것이다. 그게 중요한 거지 아직 주의 산만한 아이에게 F=kqq'/r 이런 걸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네소타 과학 박물관은 굉장히 '과학인듯 과학아닌 과학같은' 태도로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새 풍부한 과학적 경험에 푹 빠져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전시품과 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것 외에도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소(小)전시실에서 진행되던 인종(Race)관련 전시였는데, 인종에 관한 이야기를 과학의 힘을 빌어 소개했으나 실상 이 전시의 목적은 '인종 차별과 여기서 비롯된 그릇된 편견의 타파'로, 과학적이라기보다는 굉장히 정치적이 사회적인 주제였다. 그런데 굉장히 놀랍지 않은가. 과학이라는 주제 하에서의 전시를 통해어린이들에게 사회적 교양까지도 챙겨줄 기획을 했다는 사실이. 비록 미국이 차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양성의 나라라서 이런 교육이 가능했고 또 필요했을지 모르겠지만 과학이 사회와는 따로 논다는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과학 박물관에서 이런 놀라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번 관람을 계기로 꿈이 하나 생긴 것이, 내 고장인 안양에 근사한 화학 박물관을 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화학 공식과 원소 주기율표에 대한 압박 없이도 자유롭게 화학적 사실들을 경험하며 '이것도 화학이었어?' 혹은 '화학이 이런 것이네?' 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