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는 메일이 교수님에게서 날아왔다. 내용은 '잠깐 들렀다 갈 수 있어?'


아침에 멀티블록공중합체 과제에 관한 미팅을 신나게 했는데 아직 못다하신 이야기가 있는 건가 싶어서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웬 문서를 건네주신다. 뭔가 익숙한 양식, 알고보니 고용 계약서였다.


내가 2016년 9월 1일부터 연구를 시작한 이후로 벌써 10달이 지났다. 물론 1년이라는 시간이 전혀 새로운 일에 착수해서 결실을 얻기까지에는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닌지라 ― 물론 게중에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해서 모든 것을 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 일반적으로 박사후연구원은 1년 반 이상 진행한다고 많이 들어왔다. 그동안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다. 합성부터 시작해서 고분자 물성까지... 하지만 배운 것은 배운 것일뿐, 사실 실질적인 '출판 가능한' 결과를 확실하게 얻은 것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계약 연장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을지, 다른 자리를 알아봐야하는지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특히 올해 2월경...) 나아갈듯 나아가지 않는 지지부진한 연구 성과에 다소 의기소침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도 교수님께서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는 점을 들어 계약 연장이 합당하다고 말씀해 주셨고,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약 연장서에 사인을 했다. 그 결과 박사후연구원으로서 최대한 2018년 8월 31일까지 이곳 미니애폴리스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에 또 죽어라고 일을 해야할 것이다. 그래도 나를 불안하게 하던 요소 하나가 확실하게 제거된 덕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