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ustrating."


여름 방학 기간동안 연구참여를 하고 있는  학부생이 오늘 내게 한 말이다. 이 친구와 함께 블록공중합체 자기조립 실험을 지난 1월부터 진행했는데, 4월경까지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다가 여름 방학 기간에 돌입하면서부터 지지부진 ― 최근에는 정말이지 특별한 진보를 이루지 못한 답보 상태의 연속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상 혹은 기대했던 결과가 번번히 나오지 않자 이 친구도 퍽 실망감이 컸던 모양이다.


물론 실험을 지도하고 이 일로 교수님과 많은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나 역시 좌절감을 크게 느끼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나는 실험과 관련한 낭패감을 박사과정부터 지금 포닥 시절까지 굉장히 여러번 겪은지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하며 어느 정도 훌훌 털어낼 수 있는 반면, 이 학부생 친구는 이런 시련이 익히 경험된 바가 아니었기에 적잖이 스트레스가 되는 모양이다. 그런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라서, 늘 okay라고 말해주고, 또 결과만 중요한 것은 아니며 이 과정 중에 네가 굉장히 많은 것을 해냈고 보여줬다고 격려해주었다. 물론 그럼에도 가장 좋은 해결책은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도, 그리고 그 친구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해주는 말들이 공허한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공히 알고 있을 터.


학부연구생이 자기가 맡은 일에 좌절감을 느끼는 것 자체는 굉장히 긍정적이다. 연구주젤고 주어진 일을 '내 일'로 여기고 어떻게든 성공시키겠다는 어떤 욕심이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연구에 별 관심 없이 시간만 때우기 위해 온 학생이라면 성공하나 실패하나 그 연구 자체는 내 알 바 아닌 일이 된다. 결과적으로는 연구에 대한 열의가 굉장히 낮고 또 뭔가를 더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학부연구생들은 모두다 열정이 가득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이 학부생은 어느 누구보다도 굉장히 성실하고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아이이다. 그런데다가 성실하게 지도를 잘 따라주고 내가 다른 일들로 정신이 없는 동안에도 묵묵히 실험실에서 일을 해 주니, 나는 이 친구를 향해 가지는 고마움이 참 크다. 그러다보니 그에 비례해서 이 친구를 향해 느끼는 미안함도 굉장히 크다. 소소한 결과라도 잘 수확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했다면 더욱 더 흥미를 가지고 즐겁게 일했을 텐데. 그런 즐거움을 안겨주지 못해 굉장히 미안할 따름이다.


이 학생이 8월까지만 일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이 일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종료될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지만 함께 최선을 다해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