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스미소니언(Smithsonian) 자연사 박물관을, 그리고 오후에는 미국사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각각 돌아보는데 2시간 반 정도와 3시간 반 정도를 소모했는데, 모두 유쾌한 경험이었다. 일찍 가지 않았으면 추운 야외에 늘어선 줄에서 고생 꽤나 했을 것 같은데 다행히 개관 시간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일찍 가서 대기하는 바보짓을 한 덕분에 춥지 않게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류의 진화에 관한 섹션과 운석에 관련된 섹션이었다. 전자는 인류의 진화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불필요한 논란을 부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그러나  과학적으로 잘 담아 정리했다는 점에서, 후자는 대한민국에서는 찾기 힘든 운석 관련된 정보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작 사람들이 극찬하던 광물 전시는 그냥 그랬는데, 내게는 그저 다양한 화합물을 모아놓은 것으로밖에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 집에는 지질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각종 광물들이 거실 장식장에 진열되어 있었기에 스케일이 더 커진 것일뿐이라는 생각이 더 컸고,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큰 감명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이 광물의 색깔과 형상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광물 결정들이 가지는화학적인 면들도 좀 바라볼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가끔 들었다. 만약 아버지와 내가 스미소니언 광물 전시실에 같이 갔다면 아주 흥미로웠을텐데 말이다 ㅡ 아마 둘이서 자원 도슨트 역할을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2층의 절반은 아버지의 전문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층과 암석, 변성과 광물의 형성을 아버지는 이미 수십년간 다뤄오셨으니까.


점심을 근처에서 멋지게 해결한 뒤 미국사 박물관에 갔는데 사실 이게 더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역사는 짧고 또 미국 고유의 유물이랄 게 별로 없기에 연대별로 전시실이 꾸며진 곳의 전시품은 정말 보잘 것이 없었다. 마치 알마티에 있던 카자흐스탄 국립 박물관에서 받은 느낌과 흡사했다. 그러나 주제별로 묶인 전시실의 내용과 전시품의 수준은 정말 훌륭했다. 미국인들의 식문화를 통한 미국 역사 들여다보기, 교통수단 ㅡ 특별히 자동차의 발전을 통해 미국의 도시와 도시간의 연결 발전의 역사를 살펴보기, 대통령의 역사를 통해 미국사의 굵직한 시건을 이해하기, 이 모든 것들은 미국사 박물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의 전시였다.


그리고 전쟁이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야기 요소라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굵직한 전쟁들을 여러번 거치면서 지금의 미국이 만들어졌고, 더 굵직한 전쟁들을 여러번 더 거치면서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이랄까. 전쟁이 언제나 부정적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침략당한 것이 역사상 전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의 역사와 비춰보면 참 많이 다르다.


아, 한가지 더. 워싱턴 여행을 하면서 과연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국부로서 미국인들로부터 얼마나 추앙받는지, 또 그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위대한 사람인지 이번에 잘 알게 되었다. 존경받는 국부의 존재가 부재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였다.


매일같이 버거를 먹다보니 좀 질리는 것 같아서 샐러드로 저녁을 해결하고 국립극장(National Theater)으로 향했다. 말이 국립극장이지 실제로는 사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이란다. 오늘 밤에는 여기서 레미제라블(Les Miserable) 뮤지컬 공연이 있었는데, 고3 때 재미있게 읽었던 장편소설이자 수년 전에는 영화도 재미있게 관람한 기억이 있는 작품이었기에 이번에 뮤지컬로도 한 번 보게 되었다. 노래도 연기도 다 괜찮긴 했는데 "서양 스타일의 신파극"이라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 곳곳에서 코를 훌쩍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신기했던 점이 극중 에포닌(Eponine)의 소설에서보다 더 커졌다는 점인데, 순애보를 간직한 팥쥐라니... 내겐 좀 어색했다.


내일은 아마 국회도서관을 돌아보고, 그렇게도 사람들이 추천하는 항공우주박물관에 가볼까 한다. 아니면 버지니아(Virginia)의 알링턴(Arlington)으로 넘어가 국립묘지와 펜타곤(Pentagon)을 구경할수도... 딱 한가지 희망하는 것은 워싱턴을 떠나기 전에 빨래를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밤은 시원한 맥주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