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을 남기지 못해서 오늘 한꺼번에 뉴욕의 소회를 남기려다가 그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짧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번 뉴욕 방문은 세 번째이다. 그런데도 방문할만한 곳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에 방문하는 곳은 브로드웨이 빼고는 다 '이전에 못 가본 곳'인데 그럼에도 '다음에 뉴욕에 오면 여길 가야겠다.'하는 곳이 여럿 있다.


간단하게 한 단락씩 이번에 갔던 곳 평을 하자면...


1. The Cathedral Church of St. John the Divine


굉장히 멋졌다. 이곳에서 뉴욕 도착하자마자 신년전야 예배를 드리고 다음날 아침에 $10의 입장료를 내고 성당을 구경한 뒤 아침 감사성찬례까지 드렸는데 전혀 후회되지 않는, 굉장히 웅장하고 멋진 고딕 양식의 성공회 성당 건물이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성당 내부 예배실 중 하나에 자리잡은, 키스 해링(Keith Haring)이 제작한 제단 삼면화(triptych)였다. 제목은 그리스도의 삶(The Life of Christ)인데 이걸 보자마자 금방 매료되었고, 쉽게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 키스 해링, 그리고 미국 대중 문화의 영광을 동시에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Brooklyn Bridge


금문교와 같은 것을 떠올리자면, 브루클린 다리는 그렇게 웅장하지는 않은 현수교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맘에 든다. 브루클린 다리가 강 건너 맨하탄의 마천루들과 어울리는 순간 20세기 이전과 이후의 영광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 같아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날 날씨가 너무 추워서... 사진을 찍다가 손이 얼어버리는 줄 알았다. 브루클린 다리 주변에는 별다른 특별한 게 없었다는 느낌이었다.


3. Blue Note


슬프게도 Chris Botti의 신년 공연은 내 타입이 아니었다. 재즈 공연이 아니라 재즈 공연을 빙자한 디너 쇼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주요한 블루노트의 전략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hris Botti는 유명한 트럼펫 주자 중 하나인데 솔직히 실력보다는 외모가 더 입에 오르내리는 아티스트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지 공연 중에 보여준 그의 모습은 마치 '나도 내가 잘 생긴 거 알아,'라고 말하며 자신의 연주 모습을 극적으로 연출시키는 데 주력하는 느낌이었다. 그게 싫거나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은 미중년의 멋진 연주 모습보다는 재즈 특유의 그루브와 텐션이란 말이다. 게스트 아티스트 대부분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는데 특히 안드레아 보첼리의 'Time to Say Good Bye'가 무대 위에서 장엄하게 울려퍼졌을 때 나도 모르게 탄식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바(bar) 자리를 예약했는데도 자리가 없으니 공연 시간 내내 바 구역에서 그 우스꽝스런 디너 쇼를 서서 봐야했다는 것은 블루 노트에 대한 좋은 감정을 싸그리 뒤엎어버리는 데 일조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뉴욕의 블루 노트를 방문할 일은 '누구를 모시고 갈 일' 외에는 일절 없을 것 같다.

4. UN headquater


여기는 방문하여 투어를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투어를 해야만 한다. 투어를 안 하면 이 곳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 주요한 의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는 안보리 회의장과 총회 회의장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국제 이슈가 머릿속에서 핑핑 스쳐 지나가면서 내가 정말 중요한 장소에 서 있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들어왔다. 게다가 최근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안보리와 총회는 아주 핫한 장소가 되지 않았던가. 밖에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추위에 떨며 1시간이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5. St. Patrick's Cathedral


로마 가톨릭 대성당인데, 첫날 방문한 성 요한 성공회 성당에 비하면 그렇게 압도적인 느낌은 안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한 부분은 여기 성당 좌측에 카파도키아 교부 셋과 함께 알렉산드레이아의 총대주교였던 아타나시오스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ㅡ 아타나시오스는 내 성공회 신명이다.


6. St. Thomas Episcopal Church


여기는 꼭 방문해야 한다! 이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제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의 스페인의 플라테레스코 양식을 보는 듯한 현란하고도 거대한 대리석 장식 제단을 보는 순간 경외감이 들 정도이다. 마호가니로 현란하게 장식된 성가대석과 설교단을 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이다. 특히 성가대석 측면에는 기독교 성인들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한 문학가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보통 교회에서는 보기 힘든 셰익스피어, 단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교회가 너무 맘에 들어서 오후 5시 반에 있는 감사성찬례에 참례했다. 그런데 제단이 벽제대로 되어 있고 식탁 형태의 제대가 놓여있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이 교회는 굉장한 고교회(Hich Church)의 전례 양식을 따르는 듯 했다. 아니나다를까, 감사성찬례의 형태도 굉장히 고전적인 형태였는데다가 사용하는 성경은, 이럴수가, King James Version 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다양성을 사랑한다. 하느님을 따르는 인간들은 모두 다 다르고 다양하니까.


7. Gerald Schonfeld Theater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Come From Away'를 봤다. 지금까지 내가 본 뮤지컬은 모두 가상의 그럴듯한 이야기, 혹은 아예 허구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배경과 인물, 스토리가 모두 비현실적이다 못해 작위적이기까지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번에 본 뮤지컬 'Come From Away'는 매우 달랐다. 우선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그 시대는 바로 2001년 9.11 테러 사건이었고 이 뮤지컬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또한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만큼이나 무대에 등장한 배우들의 연령은 매우 다양했는데, 지금까지 본 뮤지컬 중 배우들의 평균 연령이 매우 높았다고 생각한다. 한편  화려한 춤과 매혹적인 넘버 대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을 통해 탁자와 의자만으로도 각양각색으로 재창조되는 무대,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 배경 속에서도 어려움 없이 진행되는 배우들의 1인 다역 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전개와 이해에 전혀 무리가 없는 탄탄한 구성, 무엇보다도 억지 울음이나 신파적 감동을 유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모를 훈훈함, 감동을 느끼게 해준 것,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매우 놀라게 해 주었다. 참고로 이 뮤지컬은 시카고처럼 악단이 무대 위에서 (그러나 대체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주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가끔 연주자들이 무대에 난입(?)해서 연기에 참여하기도 한다.


내일은 짐을 모두 정리한 뒤 자연사 박물관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만일 그럼에도 시간이 더 남으면 센트럴 파크를 거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한 번더 방문하고 미니애폴리스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까 생각중이다. 이렇게 여행의 마지막날이 다가오고 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