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나는 전문연구요원으로서 병역을 마쳤으므로 군생활(?) 내내 총을 쏴 본적이라고는 훈련소 때가 전부일지라도 병역법에 의거하여 나는 엄연히 예비역 신분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익년인 2016년부터 받게 되었다. 첫 예비군 훈련은 2016년 봄, 당시 자취를 하고 있던 관악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받았다. 그리고 2016년 8월부터 미국에 머물게 되면서 2016년 나의 훈련 상황은 '보류'가 되었다. 특히 2017년의 경우 국내에 체류한 시간이 15일이 안 됨에 따라 훈련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랬던 내가 영구히 귀국함에 따라 2018년 예비군 훈련은 더 이상 보류가 아니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한 해 예비군 훈련을 규정대로 32시간 모두 이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이미 지난 9달동안 대부분의 예정된 예비군 훈련이 모두 종료된 까닭으로 이렇게 규정 시간을 못 채운 사람들을 위한 보충훈련이 개설되는 11월에 밀린 예비군 훈련을 모두 받아야만 했다. 내가 KIST 입사 이후 주소지를 완주군 봉동읍으로 옮김에 따라 예비군 소속 역시 원주시 반곡관설동대에서 완주군 봉동읍대로 옮겨졌는데, 전국 어디에서나 예비군훈련이 가능하긴 했음에도 굳이 모험을 하긴 싫어서 그냥 완주군에서 이번달 26일(월)부터 30일(목)까지 오전 9시 ~ 오후 6시마다 있는 예비군 훈련을 받기로 결정했다.


전날 안양집에서 가져온 군복을 입고 오랜만에 고무링을 하고 군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니 기분이 묘했다. 어떤 이들은 군복을 입으면 굉장히 기분이 무력해지고 아픈 기억(?)들이 난다고 싫어하던데 나는 훈련소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아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약간은 들떴다. KIST 기숙사에서 예비군훈련장까지는 대략 25분이 걸렸고 나는 여유있게 8시 20분쯤에 나와 훈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차를 인도하는 조교들의 안내에 맞춰 차를 적당한 곳에 대고 훈련장으로 올라가 신원을 확인하고 총기와 각종 물품들을 건네 받았다. 오랜만에 쥐어보는 M16 총과 딱딱한 방탄모 ― 이것이야말로 우리 고분자화학자들의 자랑 아니던가!


오전에는 영점사격과 총기 분해/조립, 오후에는 안보교육과 적탄 대응 및 돌진 훈련 ― 정확히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 등을 진행했다. 오랜만에 총탄을 5발 쐈는데, 크랭크 수정이 안 된건지 혹은 내가 잘못 보고 쏜 것인지는 몰라도 탄착지점이 정 중앙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지만 한 발을 제외하고는 꽤 근접하게 (5cm 이내로) 모여 있어서 개인 영점사격 합격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장애물을 밑으로 통과하고 돌부리 옆에서 엎드려 쏴 좌세를 하고 '약진 앞으로!' 라는 구호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훈련소에 있었던 2012년 때의 일이 생각나서 잠시 감상에 젖어 있었다. 오늘은 2가지 훈련을 소화했고 앞으로 사흘간 두 개씩 매일 진행해서 총 8개의 서로 다른 훈련과목을 진행한다고 하니 기대해볼 참이다.


사실 오랜만의 예비군 훈련은 재미있었다. 물론 나만 그랬던 것 같은 것이 함께 참석한 예비군 대원들의 태도는 불량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휴대폰을 수거한다고 하면 규정에 맞게 반납하고 훈련 후에 사용하면 되지 도대체 핸드폰에 중독된 인간들인지 조금만 경계를 풀면 핸드폰 화면에 정신 나간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이며 뭔가를 손가락으로 넘기고 있다. 교육 시간에는 대놓고 자기 일쑤이며 기왕 받는 훈련 좀 힘내서 하면 좋을 것을 대충대충.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선생님이든 학교든 단체든 정해진 규정대로 안 하면서 딴청 피우며 설렁설렁하는 인간들을 정말 극도로 혐오했는데, 여기서도 이런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아무튼 남은 사흘간의 또다른 예비군 훈련을 기대하며!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