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의 거울상이고, 후쿠시마 오염수(혹은 처리수) 방류 논란은 미국산 쇠고기 논란과 거울상이다. 거울상이라 함은 이들 모두 서로 비슷한 얼개를 가진 정치적 논란이라는 점에서, 그러나 거울상 이성질체가 서로 다른 생물학/화학반응으로 귀결되듯 현 대한민국에 끼치는 정치적 파급력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광우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문제는 당시 정권의 지지율을 곤두박질치게 하였고, 침몰된 배에 갇힌 수많은 학생들을 죽음에 이르게했다는 재난 컨트롤의 부재 논란은 당시 정권의 파멸적 종말을 앛당겼다.


그러나 이들과 거울상에 있는 이태원 참사와 후쿠시마 오염수(혹은 처리수) 논란은 큰 이슈로 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과 같은 정치적 결집을 이뤄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 생각에는 이 모든 게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그리고 그러한 극단적 정치 에너지의 순환에 기생하여 힘을 얻는 정치 세력과 유튜버들이 조장하는 극심한 진영논리 대결이 낳은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현재 여당이나 야당이나 각자 30% 정도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이런 구도에서 정치적인 유의미한 변화를 일구어내려면 중간에 자리잡은 40%를 끌어들이는 한편, 상대편의 절반 정도는 지지를 유보하게 만드는 이슈를 만들거나 제3지대를 모색하게 하는 등의 '이간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각 당에서 나오는 주장들을 살펴보면 자신들을 지지하는 30%만을 위한 것들 뿐이다. 그러다보니 중간에 있는 40%는 양쪽의 주장에 대해 완벽하게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이럴수록 이들의 생각은 양비론에 기반한 절충적인 양상을 띠게 되는데, 예를 들면 이태원 참사가 '놀러 갔다가 겪게 된 인명사고일 뿐이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고 '고위 인사가 사퇴하거나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라는 말에도 딱히 동조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ㅡ '일본 정부의 불가피한 결정이다'라는 말은 어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평양에 방류되는 오염수가 전 지구적 재앙의 단초가 될 것이다'라는 말은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한다. 하도 양쪽에서 극단적인,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쏟아내니 양쪽 다 못 믿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정치적 행동에 나설만한 내적 확신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전과 같은 정치적 파급효과가 부재한 요즘, 전국민을 움직이게 하는 정치 구호와 정치적 집단 행동도 사라지고 말았다. 최근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적 영향력이 발휘된 사안 중 대표적인 것이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인 것을 보면, 요즘 사람들은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정치 담론이나 국제적 이슈보다는 내 주변, 내 신상에 영향을 끼치는 생활 이슈에 더 주목하는 모양새이다. 요즘같은 시기에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를 한다고 하면 과연 전과 같은 기세로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사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 여당을 절대악으로 상정하고 진보측의 주장을 항상 저쪽 주장보다는 옳은 것으로 여기곤 했다. 군부독재와 IMF 금융위기,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이런 뿌리깊은 구도를 절대화하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미국산 쇠고기 논란과 세월호 참사와 그 정도의 정치적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기울어진 관점이 사람들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지난 2-3년 사이에 이런 구도가 거의 허물어진 것이다. 일부 야당 지지자들은 언제까지 도덕 프레임 ㅡ 야당이 여당보다 더 도덕적이고 깨끗하다 ㅡ 안에 갇혀 있어야 하냐고 반문하지만, 그분들이 도덕 프레임에서 연원한 '현 여당 = 절대악'이라는 공식 덕을 톡톡히 봐 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도덕 프레임의 해제는 '이놈이나 저놈이나'의 관점으로 치환되는 것을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 야당의 주장이 여당에 비해 딱히 옳아야할 당위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결국 유권자는 두 주장을 같은 선상에 놓고 저울질할 것이 아닌가?


우스운 것은 지난 몇년간 양측의 주장 가운데 뭐 하나 우위를 가진 수준에서 설득력있는 게 그다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 옹졸한 변명이나 논리가 전혀 없는 생떼, 그리고 비상식이 근거한 황당무계한 주장을 더 자주 접했다. 이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밀리듯이 양비론에 기댄 절충적 정치적 견해를 가지게 되고, 양당 모두 딱히 거대한 정치 바람을 불어일으킬 힘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 프레임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 조국 前 법무부 장관이 최근에 책을 또 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할 말이 더 많기에 과거의 책을 손질해 새 책을 내놓았는지 알 길은 없지만 말이다. 냉정히 판단하자면 조국은 정치적으로 실패한 사람이다. 現 대통령을 발탁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설익은 검찰개혁을 운운하다가 결국 대결에서 지고, 그 과정에서 당시 前 대통령으로부터 별다른 특별한 정치적 힘도 공급받지 못한 채 '마음의 빚'을 상환받지 못한 빚쟁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치적인 패배는 그야말로 정치적일 뿐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다가 기회를 잡고 재기한 정치인이 어디 한 둘인가. 심지어 일본의 최장 재임 총리였던 아베 신조는 1차 재임 당시 치욕스런 패배와 함께 퇴장해야 했지만, 2차 재임은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 총리로 장수했다. 그의 인생 종말을 결정지은 것은 그가 지금까지 벌여 온 정치적 대결과는 전혀 무관한, 한 남성의 테러 행각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자꾸 조국은 자신의 정치적 패배를 도덕과 법치의 패배로 거창하게 상징화하려 든다. 자기 딸 의대 진학과 관련된 논란이 얼마나 억울하면 그렇겠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프레임을 바꾸면서 자기 살 길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자신의 위치는 옹졸해져만 간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최근 포스팅에서


‘칼’이 없는 사람으로 ‘칼’을 든 자가 찌르고 비틀면 속수무책으로 몸으로 받아야 한다. 또 찌르면 또 피 흘릴 것이다. 찌른 후 또 비틀면 또 신음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는 몇 번이고 더 사과 말씀 올릴 것이다.


라고 밝혔는데, 뭔가 멋져보이게 썼지만 기실 '난 무능력해서 이 공격을 맞받아칠 재간은 없고 그냥 국민들에게 읍소할 뿐이다.'라는 말의 패러프레이징이 불과하다. 또한 저서에서


등에 화살이 박힌 채 길 없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


라고 선언하는데, 세상 정치인 중에 저런 정치적 외상의 해결 없이 답도 없는 행보를 걸으며 지지해달라고 구걸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 백번 양보해서 조국이 정말 선하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정말 우리의 일을 대신해 맡을 수 있는 재목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일개 백면서생(白面書生)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 있든 말인가?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반대편 입장에서는 얼마나 이 인물이 '내로남불의 전형'으로 만들기에 딱 좋은 것 아니겠는가. 차라리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가 이런 시기에 재등장했다면 구원투수의 역할이라도 할 것을. 결국 자신을 무슨 민주주의의 투사로 만들려고 했던 지적 허영과 지지자들의 무지성 성원이 지금 야당의 강력한 무기였던 도덕 프레임의 상실을 견인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170석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보다 정치적 역량이 감퇴한 現 야당의 현실임을 직시해야할 것이다. 


어느 당을 지지하던간에 각 당의 역량이 전과 같지 않다는 점에서 이것은 명백히 대한민국 정치의 후퇴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