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KIST 전북분원에는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Nature Nanotechnology)'의 선임편집장 중 하나인 Olga Bubnova 박사가 방문하여 강연을 했다. 강연의 제목은 'Understanding the editorial process at Nature Research Journals'. 쉽게 말하자면 네이처 잡지 광고와도 같은 강연이었는데, 네이처와 같이 높은 충격 지수(impact factor)의 과학잡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방식으로 출판이 진행되는지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겠냐마는 ㅡ 논문을 활발하게 읽기 시작한지 10년 정도 지나니까 내가 출판해보지는 않았어도 대강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대강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네이처에 논문을 투고하는 것이 꿈인 많은 연구원들에게 도전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진행된 강연이리라.


하지만 정작 이 강연을 들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돈 주제는... 과연 이 과학 학술 논문 문화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겨야한다는데, 과학 학술논문 산업은 20세기 중반의 그것으로부터 단지 상업적으로 성장하고 기술적으로 빨라진 것을 빼면 혁명적인 변화가 없었던 것을 과학자들 모두가 안다. 우리는 과학적 사실을 알리고 나누기 위해 잡지에 논문을 투고하는가, 아니면 논문에 투고하기 위해 과학적 사실을 알아내려고 애를 쓰는가? 학술 논문의 목적이 과학적 발견의 확산과 지식 증진이라면 현재와 같은 폐쇄적인 구독 체계는 부적합한 것은 아닌가? 사실 이런 케케묵은 질문은 답하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이젠 무의미해진지 오래이다. (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카자흐스탄의 한 소녀가 Sci-Hub 라는 충격적인 답을 내놓긴 했지.) 내가 궁금한 건 이것이다 ㅡ 과연 현재의 학술 논문 산업 방식 자체가 미래 세대 가치와 양립 가능한 것일까?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글로 적힌 논문을 내는 대신 내 연구 과정과 실험 결과, 논의 등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물론 광고 몇 개와 함께.) 조회한 동료 과학자는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나는 거기에 충실한 답변을 달면서 필요한 경우 보충자료를 업로드하거나 보충 동영상 링크를 단다. 판에 박힌 글을 쓰느라, 그리고 그런 글을 읽느라 고생할 필요없이 영상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면 전달도, 이해도 편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누구나 볼 수 있고, 덕분에 원작자인 나는 광고 수입료도 얻을 수 있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물론 눈은 속이기 쉬운 덕분에 온갖 가짜 자료들이 난무할 가능성이 있고,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온갖 허섭쓰레기를 양산할 가능성도 있다.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탄생한 온라인 기반 활자 저널인 PLoS(Public Library of Science) ONE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힘을 못 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 물리학계와 생물학계는 이미 아카이브에 프리프린트(preprint)를 올리는 관행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컴퓨터 및 통신 관련 학계는 논문이 이쪽 업계만큼 중요한 것도 아니다.


즉,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학술 논문의 투고와 출판, 구독 방식 자체가 가까운 미래에도 여전히 옳은 것으로 여겨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현재의 출판 문화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면 연구 윤리 부정, 저널의 질적 하락 등 무수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무수한 문제들이 현재 체제 하에서도 꾸준히, 그리고 점점 더 많이 발생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새로운 기술이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농후하지만, 어찌되었든 학술 논문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이 땅의 많은 과학자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참고로 강연 중에 이 글을 썼다는 것은 그 강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ㅡ 내 평생에 Nature Nanotechnology에 다시는 논문을 투고할 일은 없을 테니깐!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