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에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재학생과 졸업생이 모두 모여 저녁 자리를 가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몇 번 보았던 재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으니 대략 3년만에 뵙는 분들이 많았다. 이분들과 같이 대학원 실험실에 소속되어 활동한 것이 대체로 2010년을 전후해서이니 많게는 10년, 적게는 5년 전에 매일같이 실험실에서 마주치던 분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분들의 성격이나 태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해.'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정작 그 현실을 목도하노라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탄(敬歎)의 순간에 어찌할 바 모를 전율을 느끼곤 한다. 가장 안 변한 것은 놀랍게도 외양(外樣)인데, 그렇게 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다들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매일같이 보았던 타인의 얼굴은 그 당시 이미지로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 약간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식별 능력을 상실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모두가 입을 모아 이런 상황을 증언하는 것을 보면, 나만 느끼는 생경함이 아니리라.


하지만 내적인 변화는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졸업생의 입장에서, 몇 년 선배니 몇 년 후배니 하는 숫자놀음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가 되고 보니 조금 더 여유롭고 너그러워졌달까. 최근 몇 년간 정말 자주 느끼는 것 중 하나지만 가끔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게 뭐였다고 그리 심각하게 생각했나.'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거짓된 감정이 맞다 ― 그 상황에 다시금 놓이게 된다면 똑같이 생각할 테니까. 그럼에도 마치 성인군자와 같은 마음으로 '다 이해할 수 있노라'고 흐뭇하게 모든 상황을 주시하는 것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성격을 결정하는 그 모든 사건과 감정들이 휘발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며, 게다가 그토록 다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고나니 그냥 다 똑같은 삶을 경주하고 있다는 몰개성(沒個性)이 한 몫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지금 모든 재학생들도 졸업생이 될 것이고, 지도교수님이 은퇴하여 더 이상 재학생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시점은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이 저녁 회식 자리에 모이는 모든 사람들은 오직 과거를 공유한 채 만나서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사실 지금은 '과거를 공유한 것'만으로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굉장히 비생산적인 일로 생각되지만, 어쩌면 그 나이가 되어서는 그것이 유일한 낙(樂)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이렇게 변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