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에 있을 때 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나는 미국인 학부생과 중국인 포닥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탄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 역대 대통령의 말로는 대체로 좋지 않아 추방(이승만), 쿠데타(윤보선), 암살(박정희), 사형선고(전두환), 무기징역(노태우), 자살(노무현) 등이 있다고 운을 뗀 뒤, 이제 드디어 탄핵(박근혜)이라는 새로운 전설이 쓰여졌다고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여전히 높았던 때인지라 미국에서도 탄핵 얘기가 쥐꼬리만하게라도 나오던 차였는데, 미국인 학부생은 미국 역대 대통령 중 탄핵되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은 없다고 했다. 물론 탄핵 직전까지 간 대통령이 있었음에도 결국은 물러나지는 않았더라는 것이다. 이윽고 중국 이야기. 나는 중국은 대통령이 없으니 탄핵도 없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중국인 포닥은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난 공산당 총서기(Chairman)가 한 명 있었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자오쯔양 (赵紫阳).


운좋게도 그 시기 무렵에 중국 현대사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그가 어떤 인물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는 2년의 짧은 기간 동안 총서기직에 재임했으며, '어떤 사건'에 의해 실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부주의하게도) 중국인들 앞에서 내뱉지 말아야할 금단의 그 '어떤 사건'의 이름을 꺼내고 말았으니.. 그것은 바로 톈안먼(天安門) 사건이었다. 그런데 중국 역사에는 무지할 것 같았던 미국인 학부생도 '톈안먼(Tian'anmen)'이라는 단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윽고 나를 가장 놀라게 만들었던 것은 그 사건에 대한 미국인 학부생과 중국인 포닥 간의 입장 차이였다. 우선 미국인 학부생의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그 사건은 '톈안먼 광장의 학살(massacre)'이며,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가르치는 미국에서도 잘 알고 있는 사건이라고 하였다. 반면 중국인 포닥의 반론은 다음과 같았다: '육사사건― 중국에서는 천안문이라는 장소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사건이 일어난 6월 4일로 사건을 명명한다.'은 과장(exaggeration)된 측면이 많다.


미국인 중에서 톈안먼 사건을 굉장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이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학부생 때 알았다. 당시 서울대학교 화학부에서는 Maitland Jones Jr. 교수가 저술한 유기화학 책을 강의 교재로 사용했는데 그 책 3판의 dedication (책 서문 앞에 이 책을 누구에게 바친다, 혹은 누구를 위해 쓴다고 밝히는 짤막한 헌사)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This book is dedicated to those who oppose tyrannies, large and small, everywhere. For personal reasons I want to single out the intrepid people of Tibet, who continue to resist the cruel occupation of their country, and those who were punished for their support for democracy at Tiananmen in June, 1989.

(이 책은 어디서나 크고 작은 폭정에 저항하는 이들을 위해 쓰여졌다.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국가의 폭압적인 강점에 저항을 계속하는 티벳의 용감한 사람들과 1989년 6월에 톈안먼에서 민주주의를 옹호한 이유로 처벌받은 이들을 콕 집어 말하고 싶다.)


반면 중국인들의 의견은 제각각인데, 일단 미국인과 같은 과격한(?) 생각을 표현하는 이는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이 포닥의 입장은 굉장히 중국 공산당의 입장과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긴, 이 친구는 한국의 미세먼지 문제가 중국발 오염의 영향이라는 것은 단지 정치적인 발언일 뿐이며 그러한 목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사실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당시 가벼운 갑론을박 가운데 끼인 나는 한국인으로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 보았다. 톈안먼 광장에서 있었던 사건은 분명히 학살이 맞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인민을 위한다는 군대의 총칼과 탱크 아래 무수히 짓밟히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5.18 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진실 앞에서, 우리는 분명 권위주의적인 독재 정권이라면 자신들의 권력 옹호를 위해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민주 정부 통치 하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5.18의 실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 여럿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니 여전히 일당독재 체제 하에 있는 중국인들이 해당 사건을 축소 혹은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냐'고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인의 입장, '그것은 중국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는 중국인의 입장 사이에는, 촛불집회로 박근혜 하야를 주장한 시민들과 탄핵의 부당함을 놓고 부르짖은 태극기부대 사이만큼의 거대한 간극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은 두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제는 6월 4일, 천안문 사건 30주년이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1980년대의 '정치풍파'에 관하여 논평하기를 "신중국 성립 70년만에 이룬 엄청난 성취는 우리가 선택한 발전 경로가 완전히 옳았음을 증명한다."고 하였다. 요즘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으로 으르렁거리는 이 때, 천안문 사건을 둘러싸고 극단적인 입장 차이를 보여준 두 사람과 같이 걷던 그 때가 생각난다. 과연 중국 정부와 인민의 선택은 옳았을까, 계속 옳을 것인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옳았겠지, 하지만 계속 옳을 것인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