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완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차량 시스템에 연동된 휴대폰 내비게이션 앱인 '카카오내비'를 실행했는데, 이전과는 달라진 점 하나를 발견했다. 이전까지는 도착지점을 설정하고 길찾기를 실행하면 화면 좌측에 예상되는 도착 시각이 나왔지만, 이제는 예상되는 소요 시간이 뜨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이 오후 9시라고 했을 때, 예전에는 "오후 9:34 도착" 정도로 나왔던 정보가 이제는 "34분 소요"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왜 이렇게 바뀐 거지 궁금해 했다. 그러다가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차를 조금 몰다보니 느낀 바 있어 나도 모르게 '아!'하고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예전 초등학생 시절 풀었던 문제집 ― 정확히 그게 어떤 문제집이었는지는 모른다. ― '쉬어가기' 코너에 이런 글이 있었다. 지하철 이용권을 판매할 때 '1,000원 할인'이라고 내걸고 9,000원에 10,000원짜리 이용권을 판매하는 것과 '1,000원 보너스 이용'이라고 내결고 10,000원짜리 이용권에 실제로는 11,000원을 충전시켜 놓은 것을 판매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좋은 판매 전략일까, 뭐 이런 질문이었다. 정답은 후자였다. 처음에는 '아니? 구매자는 똑같이 1,000원 이득을 보게 하는 것인데 어째서 후자가 더 좋다는 거지?'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이유를 잘 알게 되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구매자에게 동일한 이득을 보게 하면서도 1,000원씩 더 판매액을 올리는 것이니 전자보다는 후자가 이득이라는 것이다. 즉, 표면적으로는 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특정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더라는 것을 이 예시는 분명히 이야기해 주고 있다.


아직까지 어떤 이유로 '카카오내비'의 설정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게시물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 나름대로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이것은 운전자들의 과속(過速) 욕구를 미연에 방지하는 어떤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예를 들어 현재 시각 오후 9시, 내가 평균적으로 80 km/h 로 달리면서 타고 현 지점에서 80 km 떨어진 어떤 도시로 간다고 치자. 이전처럼 좌측에 도착 예정 시간이 뜬다면, 거기에는 "오후 10:00 도착"이라고 뜰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속기를 좀 더 밟아 차량을 빠르게 몰면, 좀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조금 과속을 해서 100 km/h 로 달린다고 하자. 그러면 좌측에 뜨는 정보는 "오후 9:48 도착"으로 도착 예정 시간이 조금 앞당겨질 것이다. 어라? 도착 예정 시간이 단축되었네? 더 빨리 달려보자! 더 과속에서 120 km/h로 달린다. 그렇게 되면 이제 "오후 9:40 도착"으로 바뀌게 된다! 야호! 빨리 도착한다! 즉, 도착 예정 시간을 정보로 띄워주는 경우에는 운전자가 이를 앞당기기 위해 ― 애석하게도 안전 속도를 준수하며 운전하려는 욕구보다는 빨리 운전을 끝내고픈 욕구가 큰 것이 일반적이므로 ― 과속이 유도된다는 것이다. 유도된 과속은 실제로 단축되는 도착 예정 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더욱 과속의 욕구를 증폭시킨다. 흔히 내비게이션에서 9시에 도착한다면 실제로는 8시 50분에는 도착하겠네, 이런 말들을 하는 게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소요 시간을 표기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요 예정 시간은 차량이 움직이기만 한다면 일정하게 감소하게 된다. 우리가 차를 빨리 몰면 소요 예정 시간은 다소 줄겠지만, 이것이 내가 운전하는 데 들인 시간으로 인해 감소된 분량이 적용된 것인지, 혹은 실제로 빨리 달리기 때문에 소요 예정 시간이 줄었는지 알 길이 없다. 물론,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현재 운전한 시간과 속도의 변화를 측정하여 방정식을 세워 풀면 답을 얻을 수 있기는 하다. 문제는 운전자는 그런 연산을 진행할 여유가 없다는 데 있다. 어떤 운전자는 소요 예정 시간을 현재 시각에 더함으로써 이전의 '도착 예정 시간'을 계산함으로써 이전과 같은 사고를 유지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단언컨대 이 또한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운전자는 생각보다 머릿속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가 과속을 통해 단축되는 도착 예정 시각을 체감하기 어려워지는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과속에 대한 욕구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것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과속이 생활화된 사람들은 이런 것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당장 이 변화로 인해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어떤 강박적 욕구가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연비도 20 km/h를 찍고...


아무튼 작은 표현의 변화가 큰 행동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끊임 없이 상대방의 수용과 반응을 생각하며 말해야 한다는 어떤 당위성을 경험했다고나 할까나.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