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체크아웃 직전에 이번 샌디에고행을 정리하며...


1. 우선 샌디에고(San Diego)라는 도시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간다. 언제나 맑고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 선선한 바닷바람. 높이 솟은 열대지역 식물들과 저무는 노을을 받아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하늘 위 구름, 그리고 주기적으로 굉음을 내며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들. 모든 것들이 그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왜 이 도시가 모든 미국인들에게서 사랑 받는 도시인지, 왜 은퇴 후에는 살고 싶은 도시 1위인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2. ACS에 참석할 때는 걱정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현재 일하고 있는 분야가 순수한 화학과는 거리가 많이 멀어졌기 때문이며, 소재, 특히 탄소 소재와 관련된 연구를 ACS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화학자들이 생각하는 관점을 보다 뚜렷하게 느끼고 또 그 와중에 관련된 분야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뭄에 콩나는 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탄소 소재에 대한 이야기가 전연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클렘슨 대학(Clemson University)에서 탄소 소재 연구로 유명한 Mark Thies 교수의 강연은 꽤 인상 깊었으며 그동안 내가 잘못 생각해왔던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포스터 세션에서도 많은 학생들의 발표로부터 그간 놓치고 지내왔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특히 thioester와 관련된 연구 발표로부터 내가 지금까지 궁금해왔던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 것은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NMR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되새겨봐야겠다.


3. 미네소타 대학에서 함께 생활했던 반가운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박사후연구원 지도교수였던 Christopher Ellison 교수를 비롯하여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던 Keiichiro Nomura(野村圭一郎) 박사, 그리고 옆 방에서 박사과정으로 있던 Xu Hongyun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미네소타 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셨던 계명대학교의 하기룡 교수님과도 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내년 봄 ACS 학회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열리는데, 고분자화학 100주년 기념이라서 모든 학생들을 참여시킬 거라고 Ellison 교수가 귀띔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참석할 수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4. KIST 서울 본원에서 참석한 분들도 더러 있었다. 김선준 박사님과는 따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마지막날에는 내 구두 발표 다음에 발표를 진행하신 김태안 박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참고로 김선준 박사님과는 지금 연세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된 김대우 박사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5. 연구 트렌드는 확실히 변하고 있었다. 에너지 관련, 특히 배터리 관련 연구가 굉장히 커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태양 전지 연구는 상당히 죽어버렸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연구 분야가 시장의 요구와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발전 혹은 퇴보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바라 할 수 있겠다. 확실히 블록공중합체를 활용하는 연구는 대체로 시들해졌고, 플라스틱 환경 오염과 관련한 분해성 연구에 대한 발표 및 토론이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이번 ACS의 주제가 'Chemistry & Water'인 것에도 기인했으리라. 내가 미네소타에서 진행한 연구가 본의 아니게 해당 분야에서 꽤 재미있어 할만한 주제였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6. 지금까지 미국을 수차례 오갔지만 이번처럼 시차 적응에 덜 고생한 때가 없었다. 아마도 첫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이 묶이는 바람에 개고생했던 덕분에 수면 시간에 장애(?)가 발생하여 오히려 미국 시간 주기에 강제적으로 맞춰진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점심 이후에 시차 문제 및 식곤증이 겹쳐 오는 미친 듯한 졸음은 뭐 어쩔 수 없었지만, 한때만 잘 버텨내면 그 이후에는 저녁 일정을 소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마 그 덕분에 포스터 세션을 그렇게 활발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으리라.)


7. ACS에 어제 다시 참석할 수 있을까? 내 연구 분야가 광범위하게 넓어져서 여러가지 일들을 동시에 함께 진행한다면 가능할는지... 물론 그렇게 되면 지금같이 1주일정도 여유를 가지고 학회에 참석하기보다는 2~3일 정도만 짧게 있다 가는 식으로 국제 학회를 참석하게 될 가능성도 있겠지. 아무튼 국제 학회 참석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이번 학회였다.


그나저나 일요일 새벽 4시에 도착할텐데, 1주 정도 한국에서 보낸 뒤에 추석을 낀 휴가로 유럽에 갈 예정이다. 어쩌다 이런 일정이 잡혔는지 원... 아무튼 그 1주동안 정말 열심히 일할 테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