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본여행은 외부에 발설(?)하기에 매우 조심스러운 여행이 되고 말았다. 여행 준비가 한창 끝나고나서 터진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는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인들의 여행 여정을 조금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는 취소나 연기로, 어떤 이는 SNS에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물론 게중에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일반 정치인이 그랬다면 논란 끝에 사과할 일이 일반인이라고 해서 쉽게 넘어가리라고 생각하는 그 유치한 순진함이 너무 싫었고, 그래서 나 역시 SNS에는 전혀 일본 여행과 관련된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것은... 적어도 SNS와 같이 개방적이지는 않으니까 괜찮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근거로?)


오는 길은 사실 힘겨웠다. 전날 갑자기 탄소산업과 관련된 과제 수요조사를 제출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밤 8시까지 이것과 씨름하느라 골머리를 앓았고, 급히 시흥 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험하기 지 없어 그야말로 폭를 뚫으며 달려와야 했다. 10시 40분쯤에 집에 도착했는데, 아버지의 일을 돕느라 거의 자정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마침 오늘이 10월 3일 개천절 공휴일이라서 알람이 안 울렸다!! 다행히 아버지께서 예비로 알람을 하나 켜 두셔서 겨우겨우 일어나 김포공항에 갈 수 있었다. (이렇게 부자는 오늘도 사랑과 비난을 하나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김포공항은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나는 39번 탑승구에서 대한항공 서울김포발 오사카간사이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康成)의 소설 『설국(雪国)』를 읽었다. 굉장히 서정적인 글임을 음미하며 읽는 것도 잠시, 기내에서 나는 이내 곯아 떨어졌고, 기내식을 먹고나서 얼마 안 되어 오사카에 도착한 것을 알게 되었다.


4년만에 찾는 오사카. 정확히 같은 역인 신이마미야(新今宮)에 내려서 덴노지(天王寺)까지 걷다보니 예전에 묵었던 호텔 타이요(ホテル太陽)를 만났고, 새로 건설된 하루카(Haruka)라는 고층 빌딩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거기서 긴테츠(近鉄)선의 특급열차를 타고 요시노(吉野)역으로 향했는데... 이 열차가 굉장히 괜찮았다! 내장재도 아주 고급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좌석이 아늑하고 편안한 것이 최고였다. 열차 내에서 각종 음료와 다과를 판매해서 잠좀 깰 겸 커피를 하나 주문했다.


그렇게 도착한 요시노역. 내려서 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살짝 당황했다. 케이블카를 타려고 했더니 화~목요일에는 케이블카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대신 탄 버스를 타고 요시노야마(吉野山)역에 내렸는데... 내가 묵을 료칸(旅館)인 치쿠린인군포엔(竹林院群芳園)에 가기까지 꽤 멀고 험한 길이었다. 캐리어를 괜히 가져왔네, 코트를 괜히 가져왔네, 속으로 엄청 자기 비난을 하며 옷을 땀으로 완전히 적신 채 료칸 입구에 들어섰는데! 직원들의 따뜻하고 친절한 응대와 운치 있는 시설, 그리고 곧이어 진행된 샤워 덕분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시간이 다소 늦어져 긴푸센지와 요시미즈 신사(吉水神社)는 내일 가게 될 것 같아 그냥 료칸의 정원을 한바퀴 둘러보고 저녁으로 제공되는 가이세키 요리(会席料理)를 천천히 먹었다. 배도 부르니 지하 공동욕장에 내려가서 온천탕도 즐기고, 올라와서 책을 보며 맥주를 한 잔 들이키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사실 한국의 멋진 산속에 있는 별장에서 하루 운치 있게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그래도 요시노는 역사상 중요했던 지역이기도 하고 나름 국보급 세계유산들이 있는 곳이니 내일 잘 살펴보고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인 나라(奈良)로 가야겠다. 아무튼 오늘 고생이 많았는데 이렇게 잘 마무리되어 기분이 무척 좋다. 잠 푹자고 내일 일어나서 맛난 아침을 또 먹어야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