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5-6년만일까, 진짜 몇 년만에 남성잡지 GQ를 사서 읽었다. 언젠가 들렀던 카페에서 이충걸의 약력에 '전 GQ KOREA 에디터'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고 '아니 이충걸이 언제 GQ를 떠난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날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 잡지를 사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최근 구매한 잡지라곤 오직 길거리에서 만나는 빅판 아저씨들이 파는 BIG ISSUE 뿐이었는데 말이다. 마침 우연히 들른 동네 서점에서 진열대에 꽂힌 GQ를 보았고, 나는 선뜻 2020년 1월호를 집어들었다.


가격은 6,500원. 아니 왜 이렇게 싼 걸까? 예전 대학원생 때라면 6,500원이란 학생식당 두 번 먹고도 남을 넉넉한 금액이었는데. 요즘은 밖에서 먹는 김치찌개 한 그릇 가격보다도 못하다니. 분명 그때보다 물가는 올랐는데 왜 잡지 값은 딱히 올랐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잡지의 크기와 두께도 좀 줄어든 것 같고. 사실 원래 남성잡지 고유의 양감을 완벽히 망각하고 말았다. 예전, 그러니까 헤어 펌을 주기적으로 하던 10여년 전에는 비닐 랩이 씌워진 머리 위로 느린 선풍기처럼 돌아가던 기계가 내 머리카락을 구성하는 케라틴의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완전하게 깨부수는 그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GQ를 읽었더란다. 미용실 안에는 다른 남성잡지 Esquire도 있었지만 GQ의 글과 소재가 훨씬 멋지고 기품이 있었다(는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때는 뭔가 크기도 더 크고 종이도 더 반질반질하고 광택이 났던 것 같은데. 인터넷의 발달과 전자 매체의 발달이 남성잡지의 형태도 바꾸어 놓았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6,500원은 너무 싼데, 혹시 내용의 질적 저하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재기 넘치는 글들이 있었고, 사보고 싶은 물건들도 가득 있었다. 특히 안경을 여러 개를 사서 때에 따라 바꿔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흘러 넘치기 시작했는데, 안경이 비록 연말 소득공제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불필요한 지출은 할 필요가 없노라며 내 자신을 가까스로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뭐 이런 옷을 입고 설마 거리를 활보하지는 않겠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최근에 한강진과 이태원 사이를 오가다가 만난 힙한 어떤 20대 아이들의 복장을 보고 '여긴 완주가 아니라 서울이야.'라고 긴급 최면을 걸었던 것도 생각이 났다. 그런 감상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하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역시나 모델들이 걸치고 온 옷들과 각종 패션잡화 ㅡ 이상하게 난 이 잡화라는 표현이 무척 맘에 든다. ㅡ 의 가격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읽힌다는 것. 예전에는 '오렌지 브이넥 스웨터. 60만원대' 이런 것을 보면 무슨 스웨터 따위가 60만원을 호가하는가! 이렇게 탄식을 내뱉었겠지만, 옷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가에 대해서 얘기를 들어보고 마침 그런 비싼 옷들이 즐비한 동네를 한두번 돌아다녀보니 왜 가격이 그런 고가에 '형성'되어 있는지 누군가에게 자세히 설명은 못해줘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예전과는 달리 내가 가진 돈으로 그 제품을 못 살 것도 아니라는 게 굉장히 달라진 점이었다. 단지 내가 그런 지출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선뜻 카드를 긋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과거에는 몽상처럼 느껴지던 그 짤막하고도 무심한 가격 설명 문구가 이제는 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내 보통 씀씀이에 0을 하나 더 붙이는 수준으로 보통 지출한다는데, 내가 6만원짜리 스웨터를 고르듯 그들은 60만원짜리 저 오렌지 브이넥 스웨터를 들었나 놨다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255만원 로고 프린트 재킷은 어떻겠는가. 대한민국 1%들에게는 그야말로 합리적이면서도 99%를 성공적으로 배제시킬 수 있는, 적당한 가격을 형성시키는 0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예전보다 문화 관련된 평론이나 긴 글들이 대폭 줄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것도 장문의 독해를 멀리하는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떡국을 한 그릇씩 먹어가면서 GQ가 타겟으로 삼는 주요 독자층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탓인 것일까. 혹은 내가 요즘 책을 많이 읽어서 활자 개수에 대한 감각이 예전과는 달라진 탓일까. 내게 잡지는 보는 것 이상으로 읽는 것이 중요했는데, 얼마 읽지 않아 바로 사진 컬렉션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어 약간 혼란스러웠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옛 생각도 나고 재미있었다. 2월호을 구매하게 될지는 아직 자신이 없지만, 6,500원이라면 그리 부담갖지 않고 사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영화보다 더 오랜시간 즐길 수 있는데도 영화보다 훨씬 더 싸다면 이건 합리적인 구매 아닌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