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부터 오늘까지 2박3일간 광주에서 대한화학회가 있었다. 명색이 화학 전공이지만, 대한화학회는 지금까지 딱 두 번만 갔었고 이번이 무려 10년만이었다. 10년 전에는 대학원생 발표로 블록공중합체 마이셀 배열 관련된 연구 발표를 위해 왔었는데, 지금은 KIST 연구원으로서 셀룰로스 탄화 관련된 연구 발표를 위해 왔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좌장이 한양대학교 강영종 교수님이었는데, 이번에는 내 다음다음 발표자가 강영종 교수님이었다. 물론 교수님이 그런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실 리 결코 없었으나 뭔가 기이했다.


원래 대한화학회는 전통적으로 분과별로 강연이 진행된다. 그 분과라는 것이 참으로 고전적인데, 이를테면 유기화학, 무기화학, 물리화학, 분석화학과 같은 식이다. 그래서 고분자화학 분과는 다른 분과에 비해 작기도 하고 원래 고분자학회라는 큰 규모의 전문학회가 따로 있어 그간 대한화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적은 편이었다. 마침 이번에는 대한화학회가 새로운(?) 시도를 해서, 첫날에 분과별이 아닌 주제별 특별 세션을 만들어 분과에 얽매이지 않고 연사를 초청하였다. 그리고 어쩌다가 해당 특별 세션 조직을 맡으신 교수님의 연락을 건너 건너 받고 발표를 할 기회를 잡게 되었던 것이 바로 이번 대한화학회 발표의 배경이 되겠다.


그렇게 수요일에 잘 발표를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상무지구에 있는 Tap House 60 이라는 곳에서 맥주를 맛있게 마시고... 그랬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목이 어딘가 칼칼한 것이었다. 문득 생각이 들어 근처 편의점에서 마스크와 코로나19 자가 검진 키트를 구매해서 실시했는데, 그날 오후와 밤늦게 진행한 검사 결과 코로나19는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채 학회발표장에 갔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운 것만 같았던 목의 칼칼함이 점증(漸增)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급기야 오후 세션 종료 시간이 다가올수록 팔이 점차 쑤셔옴과 함께 기력이 조금 빠지는 것을 감지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오후 세션을 마치고는 그냥 소리소문 없이(?) 학회장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다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목감기다.


밤이 깊어지면서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오후만 해도 별달리 기침이 터져 나왔고, 이제는 등과 허리가 쑤셔오는가 하면, 경미하지만 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차마 숙소 창문을 열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이불 안에 있으니 더워 미칠 지경이었다. 마침 숙소 냉장고에 있던 물과 함께 학회장에서 챙겨온 물을 조금씩 나눠 마시면서 칼칼한 목을 달랬다.


그렇게 자정 쯤에 잠들었나?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경미한 몸살기와 열은 모두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하루 반짝 앓았던 것이었다. 본래 금요일에 내가 참석해서 들을 만한 강연이 더러 있었는데, 일정을 바꾸어 조금 일찍 익산 집으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출장비 일부를 반납해서라도 학회에 쭉 참석하면서 더 많은 감기 환자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그게 더 현명할 듯 싶었다. 다행히 집에 도착하자 가래만 이따금씩 나올 뿐 두통이나 몸살, 열은 없었기에 집에 일찍 도착해서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국외/국내출장 기간 동안 밀린 일들을 소화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온갖 종류의 감기와 독감이 기승을 부린다더니 정말 그러한 모양이다. 너무 황당하게도 수요일은 최고의 컨디션이었고, 목요일은 최악의 컨디션이었으며, 금요일은 평시 수준의 컨디션이었다는... 정말 컨디션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온 기분이었다. 감기로 인해 이번 주말에 시흥집에 올라가서 이것저것 친구들도 만나고 여러 모임에도 참석하려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지만, 한편으로는 집에 머물면서 그동안 미뤄온 일들도 다 마무리할 수 있는 여유가 이제서야 마련된 것 같아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덕분에 오랜만에 대한화학회에서 발표도 하고, 아는 선후배도 정말 오랜만에 만나 인사도 드리고, 괜찮은 기회였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