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한심한 죽음이 또 어디있을까? 이것은 정의기억연대의 윤미향 의원으로부터 시작된 민주계열 시민사회의 몰락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다. 이제 이 사람들이 상대 진영을 바라보며 도덕적 우월성을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내로남불 프레임에 같인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실력을 통한 증명' 뿐인데 실력이 일천한 이들이 해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한심한 죽음에 이어진 한심한 장례식. 그리고 그 한심한 죽은을 옹호하고 미화하느라 바쁜 지지자들의 항심한 논리.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니 진절머리가 나는 것을 넘어 역겹다. 박원순의 죽음은 개인의 속죄를 가장한 자기파멸인데, 이 자기파멸의 유산은 오직 이것뿐이다: 486세대, 특히 친문 계열 사람들과 페미니즘의 결별. 어느 누구라도 그의 파멸로부터 이것 이외의 다른 정치적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어느새 자기 모순에 빠져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아무런 연민도 느껴지지 않으나 그와는 관계없이 자연인의 사망은 언제나 애도받을 가치는 있다고 여긴다. 고인의 명복을, 그리고 그가 좇던 가치의 명복을 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