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쯤에 학생 중 한명이 완충 용액(buffer solution)을 잘못 제조한 것 같다며 사무실에 찾아왔다. 아세테이트(acetate, CH₃COO-) 완충 용액을 만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염기성 용액인 것 같다는 것이다.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니 아뿔싸, 증류수에 소듐 아세테이트(sodium acetate, CH₃COONa)만 왕창 넣었다는 것. 그래서 완충 용액에는 짝산과 짝염기가 함께 들어가 있어야 하니까 아세트산(acetic acid, CH₃COOH)을 같이 넣어주어야 한다고 얘기를 해 주다가 어느새 얘기는 헨더슨-하셀바흐 식(Henderson–Hasselbalch equation)으로 넘어갔다. 아, 이거 고등학생 때 열심히 유도하던 식이었는데. 역시나 일반화학 내용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사랑하는 정두수 교수님 만세, 뭐 이런 생각을 설명 중에 하고 있었다.


어제 학생이 다시 찾아와서 자기가 새로 만든 완충 용액의 pH를 측정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최근에 전극을 교체해서 보정이 아주 잘 되어 있는 pH 미터로 용액의 액성을 측정을 했더니 pH = 5.20 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그 학생이 옆에서 '오, 신기하다.'라는 게 아닌가? 그래서 왜냐고 물어봤더니, 그 헨더슨-하셀바흐 식에서 pH가 5.20이 되도록 완충 용액을 만들었는데 진짜 pH 미터로 쟀을 때 그 값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화학이 거짓말은 하지 않네요?' 라고 웃으면서 실험 기기를 정리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사실 완충 용액 내에서의 화학 평형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고, 헨더슨-하셀바흐 식을 통해서 계산한 결과가 관찰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일견 이것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우리의 삶 대부분이 계산된 대로, 예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다는 것을 일상 생활 중에 너무 자주 겪기 때문에 뻔히 아름답게 유도되어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 식조차 제대로 들어맞을 지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식대로라면, 알려진 반응식대로 모든 일이 이뤄진다면, 마치 시험공부한 만큼 시험점수가 나오는 것처럼 가정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 당연할텐데. 바라는 것이 현실이 되는 일은 오히려 마법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니 어찌 보면 교과서에 떡하니 나와 있는 사실조차도 눈으로 확인하고나서야 소스라치게 놀라는 학생의 심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 연구하는 사람들은 꽤 독특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연구자는 자기가 가정한 것을 토대로 얻고 싶은 결과를 마땅한 원리에 따라 직접 관찰해 내기 위해 부던히 일하니까 말이다. 보고 싶은 것만 취사 선택해서 결과를 왜곡하는 우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사실 연구자들은 늘 자기가 꿈꾸는 것들을 현실로 환원시키는 마법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지방산을 활용한 연구가 마무리되면서 논문 작성을 거의 완료했고, 마침 오늘 문득 생각이 들어 예비 실험을 간단히 하나 진행했는데 이것 역시 잘 키운다면 파급력 있는 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의 문턱에 이르기까지는 참 고되지만 한번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꼭 하나씩 이렇게 나를 기쁘게 만드는 일들이 생기곤 하는구나. 논문을 마무리지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어 잠시 적어 보았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