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실제 골프장 정규홀을 다녀왔다. 고등학교 동창인 진환이와 경복이의 참여로 제안된 이 골프 모임은, 사실 내가 여기에 끼기엔 실력이 많이 못 미치기는 했어도 선뜻 이들이 첫 라운딩에 나서는 나를 받아준 덕분에 결성될 수 있었다.


새벽 4시가 넘어 일어나서 간단히 씻고 정리한 나는 모든 짐을 싣고 경기도 안성과 충청북도 진천 경계에 있는 아난티 중앙클럽으로 향했다. 새벽 5시 SBS 파워FM에서는 애국가가 울려퍼진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어 이인권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데, 이 힘든 월요일에 출근을 준비하는 사람과 늦은 밤/새벽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을 위해 여러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읊는 것을 듣노라니 골프를 치러 새벽공기를 가르며 운전하는 나는 약간의 민망함을 느꼈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골프장. 아직 어둑어둑했지만 조명이 환하게 비춰져 있었다. 이 산 아래에서는 도저히 이런 골프장이 산 위에 조성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건만, 말끔하고 쾌적하게 깔려있는 잔디와 나무들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멋지다 ㅡ 진짜 내가 골프장에 왔구나!


진환이가 클럽하우스에 골프채와 백을 맡기면 된다고 했건만, 나는 클럽하우스를 지나쳐 로비가 있는 정문에 차를 먼저 대는 바람에 결국 내가 직접 골프채와 백을 가지고 로비에 계신 분께 전달해 드려야겠다. 역시 처음 오는 사람은 뭐 하나 아는 것이 없어 허둥대야 한다고 촐싹맞게 너스레를 떨었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8년 전에 본 게 마지막이었던 경복이는 어째 더 살이 빠진 것 같았고, 딸을 키우느라 한창 바쁜 진환이는 더 살이 쪘다. 진환이야 회계사로 복귀하여 일을 재개했다는 얘기를 지난 번 익산에서 만났을 때 들어 알고 있었지만, 경복이가 평택에서 국숫집을 운영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혹은 전에 종한이가 얘기했던 것을 잊었던 것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셋이 본 적인 처음이었음에도 마치 지난 번에도 한 번 이렇게 봤던 양 우리는 가볍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라운딩을 떠나기전 간단한(?) 아침밥을 클럽하우스에서 먹고 각종 티(tee)가 담긴 케이스와 로스트 볼(lost ball)을 수북히 담은 자루를 가져와 카트에 실었다. 스트레칭이 끝나고 드디어 라운딩이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 홀에 한 번 정도 '오, 잘 쳤네.' 싶은 샷이 나온 정도였다. 그 말인즉, 많은 드라이버 샷은 내 의지와는 달리 앞 땅에 쳐박히거나 오른쪽 해저드 혹은 OB 구역으로 빠지기 일쑤였고, 그나마 잘 맞은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아웃되고 말았다. 어드레스와 몸통의 회전, 코킹과 힌지, 팔로스루와 피니시 동작까지 사실 생각해야 할 것은 도대체 한두개가 아니었으나 정작 샷을 하기 위해 자리에 서면 그 모든 것들이 하얗게 사라져가는 것이 마치 처음 피아노 발표회 무대에 선 질겁한 초등학생과도 같았다. 애초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첫 라운딩때부터 잘 칠 생각은 말라는 말을 꽤나 많이 들어왔기에, 사실 스코어카드에 보기와 더블 보기, 트리플 보기, 쿼드러플 보기, 더블 파가 적히는 것을 보면서도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첫 라운딩에 모든 홀마다 더블 파가 아니었던 게 어쩌면 대단한 것 아닌가?) 스코어를 기록하기 시작한 전반에는 더블 보기와 트리플 보기밖에 없었지만, 후반에서는 정말 온갖 점수가 난립했다. 어쩌면 그만큼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마지막 홀(파 5)에서 석 타만에 그린에 공을 올렸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지난 몇 년간 실내연습장에서만 익혔던 것을 실제로 야외에서 쳐보니 '현실은 다르다.'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실내에서는 그냥 앞만 보고 치기만 하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진짜 골프장에서는 내가 어디를 바라보고 목표로 삼아 치느냐에 따라 공의 진행 방향이 천차만별이었다. 실내에서는 땅의 경사와 잔디의 빽빽한 정도는 구현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곳 골프장에서는 모든 경사와 모든 잔디 상태가 다 가능했다. 중간에 한번은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곳에 버텨 서서 어프로치 샷을 해야 했는데 몇번이나 공이 아닌 땅을 쳐댔는지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실내에서는 남 생각 안하고 내 맘대로 치기만 하면 다였다. 하지만 골프장에서는 함께 라운딩을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대에 각지를 돌고 있는 다른 팀들도 배려해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어렵다.' 혹은 '제대로 안 되어서 짜증난다.'로 여겨지지 않았고, 오히려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게 진짜지. 아, 이래서 밖으로 다들 나와 골프를 쳐야 한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골프 에티켓도 배우고 여러가지 내가 전혀 생각 못했던 바를 직접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다. 더욱이 오늘 날씨가 그렇게 과히 춥지 않았기에 라운딩 도중 날씨 때문에 어려운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런 시기에는 어떤 정도의 옷을 입어야 하고, 어떤 것들을 챙겨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팁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첫 라운딩인데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잘 인내(?)해주신 캐디 분과 동행한 진환이, 경복이에게 무척 고마웠다.


물론 진환이와 경복이야 올해 몇 번이나 라운딩을 돌았기에 그런 감흥은 덜했겠지만, 18홀을 마치고 돌아와서 사우나에서 씻는 동안 나는 무척 기쁘고 황홀한 기분을 만끽했다. 물론 이 경험을 사기 위해 들인 돈은 만만치 않았으나 이 정도의 행복이라면 응당 그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했다. 진환이는 내가 이날 라운딩을 크게 흡족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되어 있었고, 나는 오히려 이런 기회를 잘 만들어주어 무척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닭 백숙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장소로 돌아갔다. 


12월에 한 번의 라운딩이 더 예정되어 있다. 그 때에는 오늘보다 좀 더 '성숙한(?)' 플레이어가 되어 골프장을 누벼야겠다. 그리고 내년에는 반드시 아버지와 다른 친구들과도 함께 라운딩을 돌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