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와 병행해서 운영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할 목적으로 어도비(Adobe) 프리미어 프로(Premier Pro)와 애프터 이펙트(After Effects)를 구독해서 사용 중이다. 처음엔 사용하기 엄청 어려운 소프트웨어인 줄 알았는데, 해당 프로그램들의 용어를 조금 익히고 예제를 따라 해보니 금방 적응했다. 알라딘에서 전자책으로 두 프로그램 입문서를 구매했는데 사흘만에 모든 내용을 읽어보고 간단한 애니메이션 및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대학원 때 내내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를 사용하면서 어도비만의 인터페이스와 철학(?)에 조금은 익숙했던 것 덕분이리라. 돌이켜보면 애프터 이펙트는 예전에 플래시(Flash)가 매크로미디어(Macromedia) 사의 제품이던 시절에 한 번 다뤄본 적이 있었고, 프리미어 프로는 중학생 때 간단한 찬양 동영상을 만든답시고 써 본 적이 있었다. 처음 프리미어 프로 CC와 애프터 이펙트 CC를 실행했을 때, 낯설면서도 왠지 기시감이 드는 기분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올해는 참 많은 것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장애물에 부딪혔다. 야심차게 시작한 스페인어 DELE B1 시험은 5월 시험이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져 다음주 주말에 시행되는 것으로 정해졌지만,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인데다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서울의 시험 장소로 가야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냥 응시료를 스페인 정부에 헌납한 셈 치고 가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5월 시험이 9월로 미뤄지면서 여름동안 스페인어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도 여기에 한 몫했다. 읽기와 쓰기에는 여전히 자신이 있지만 듣기와 말하기는 조금 더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서. 조금 여유가 생기는 겨울동안 다시 준비해서 내년 5월에 ㅡ 부디 코로나19 사태가 그 때는 좀 잠잠해지길 바라면서 ㅡ 시험에 응시할 생각이다. 물론 그 때는 1달 정도 짧게 스페인어 말하기 수업도 들을까 하는데 비대면으로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자바와 안드로이드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봄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정작 안드로이드 앱 프로그래밍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시기에 과제 작업 및 이사와 맞물리면서 진도를 쭉 빼지 못했다. 게다가 원래 목표가 성공회 성무일과 앱 제작이었는데, 이사한 이후로는 도통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제대로 드리질 못하다보니, 일을 제대로 진행할 동력을 상실한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별안간 누군가의 제안으로 인해 팔랑귀가 작동하여 시작된 이 일은 조금 달랐다. 마이크나 캠의 구매도 일사천리였지만, 무엇보다도 소프트웨어 사용 실력이 '적어도 기본' 수준은 달성되어 일단은 짤막한 애니메이션의 제작 및 편집이 가능한 수준이 된 덕에 뭔가를 해 볼 기본 바탕은 충분히 되었다. 요즘 양산되는 비디오 블로그(video blog) ㅡ 한국인들은 Blog와 Vlog의 발음 구분이 불가능하여 이를 '브이로그'라고 하는 이상한 이름으로 부른다더라... ㅡ 를 할 생각은 전혀 없고, 단지 홈페이지에 있는 과학 내용을 동영상으로 편집하여 올리면서 추가적으로 다른 화학 컨텐츠를 업로드할 생각이다. 물론 흥미로운 영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KIST 연구원은 겸직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어차피 유튜브 채널 광고 수익을 챙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니 굳이 구독자와 좋아요를 유도하기 위한 흥미 위주의 영상을 만들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나는 내 길을 찾아 가리라!


요즘 연구실에서는 논문과 특허만 주구장창 작성 및 편집 중인데,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동영상을 제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연구자의 입장에서 논문과 특허를 쓰는 것도 흥미로운 일은 맞다. 최근에 영문 교정을 위해 작성했던 논문 원고를 보냈더니 원어민 교정자가 'Excellent writing'이라는 소소한 극찬을 메모에 적어 돌려준 덕에 아침부터 기분이 아주 좋았던 적이 있었다. 조리있게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ㅡ 더구나 독자로부터 이런 피드백을 받으면 더더욱이나 좋다. 그런데 영상을 제작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의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내 지식과 생각을 조리있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것 역시 재미있는 일 아닌가? 요즘 사람들은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찾는 게 아니라 유튜브에서 찾는다는데, 화학 관련된 지식을 유튜브에서 찾는 것이 이상하지도 않을 일이라면 거기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그런 영상들이 있는 것 역시 무리는 아니지 않겠는가?


연구원에서 일하시는 대부분의 분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앞으로는 새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연구자들 역시 작문(作文)의 실력뿐 아니라 영상 제작의 실력의 향상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게 10년 뒤, 20년 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기차의 등장처럼 정말 별안간 순식간에 이뤄지게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집에서 취미 생활이나 소일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영역을 넓히고 다능(多能)한 연구자의 직업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글을 쓸 것이다. 모든 것은 극단으로 치닫지 말아야 하니까, 나는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 손에 쥔 채 걸어갈 테니 말이다. 아무튼 새로운 채널이 만들어지고 몇 개의 동영상이 업로드되면 이제 이 홈페이지에도 연동시켜야겠다. 재미있는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