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수감사주일만큼 아이러니한 주일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아수라장(?)이 된 지금, 우리에게 과연 추수할 만한 것이 있으며 감사할 만한 것이 있을까? 아침에 교회를 나서기 전 아버지에게 '아들 허리를 베어서 탈곡기에 넣어 탈탈 털고나서 감사드릴 것'이 아닐 바에야 이 시기에 추수감사란 무엇일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감사할 것이 많다. 나는 올해 참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며, 이전에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터에서 이토록 만족감과 활력을 누리며 일하게 된 것을 지극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도전 하에서 기쁨을 누린 것들, 때론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갖가지 실망과 실패까지도 모두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한 건강의 위협, 물질적 세계의 위축과 정신 세계의 피폐함은 지난 금융위기의 상황보다 더욱 심각하다. '뉴 노멀'이 자리잡은 이 시기,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상실되었고 빼앗겼으며 소진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일을 모르는 우리가 어제 이런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르고 2020년 새해를 폭죽소리 요란한 가운데 맞이했듯, 오늘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닥쳐올 지 모르고 살아간다. 코로나19가 종식될지, 혹은 그 시기가 늦어질지, 혹은 코로나19보다 더 큰 위기가 어느 면에서 닥쳐올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예측하는 것일까, 대비하는 것일까, 해결하는 것일까?


추수를 마친 농부들은 올해 일을 마무리하는 데만도 바빴을 것이다. 내년 날씨가 어떨지, 모내기는 순탄하게 될지, 작황은 좋을는지 알 수도 없고 신경도 쓰지 못할 것이다. 그저 올해 결과를 되짚어보며 정리하기는 것만으로도 무척 바쁘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이 코로나19 시대 한복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일을 돌이켜보며 정리하는 것 뿐이다. 그러다보면 이렇게 무사히 과거를 떠올리며 하루를 마감하는 오늘을 살 수 있음에 무한한 감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추수감사주일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눈길이라고 믿고 싶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