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쯤에 행정팀에서 올해 진행한 강연 목록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학회나 대학 세미나도 있긴 했지만 내가 한 해 동안 진행한 강연의 대부분은 주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 및 실험 강연이었다. 정리해놓고 보니 한 해에 한 10번 가까이는 고등학교에 가는 것 같은데, 모교가 있는 안양시는 물론이고 도내에 있는 전주시, 고창군 가리는 곳이 없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지난주 금요일 본원 총무복지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KIST 나눔상 개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니, 한 거라곤 그래도 조금씩 사례비를 받으면서 이것저것 잡다한 화학을 가르쳐준 것일 뿐인데 상을 받는다? 뭐 고마운 일이지만, 당연히 요청이 오면 최대한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일 뿐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상 받을 '재능기부'로 비춰질 줄은 몰랐다.


하긴, 예전에 일정이 맞지 않아 강연이 불가능해진 내게 다른 분을 섭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주변 아는 교수들에게 연락했을 때 다들 난처해하는 반응이었다. 딱히 커리어에 도움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일단 '강연료가 적다'는 것도 한 몫했다. 그리고 실험 강연의 경우 강연자가 그 실험 배경 이론은 물론이거니와 실제 실험 수행 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 잘 대응해야하는데, 졸업과 동시에 비커를 손에 더 이상 대지 않는 교수들이 갑자기 가운을 입고 실험을 지도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니...


그러고보면 수입 때문에 고등학생 강연에 흔쾌히 응한 것은 아니었다. 고창북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연구원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데 밤 7시부터 10시까지 강연을 마치면 그 어두컴컴한 1시간 길을 다시 차를 타고 돌아와야했다. 거리가 멀다고 추가 정산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학회나 대학 세미나처럼 무슨 식사 대접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무형의 수익조차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학생 대상 강연이다.


고백하자면 그냥 단지 화학 실험의 재미를 학생들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아이들의 실험이 성공하면 나도 왠지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고. 내가 얘기하는 것들은 학교나 학원 수업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내용이기에 무언가 우쭐댈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어차피 국민 세금을 받아 연구하며 살아가는 정출연의 박사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서, 그리고 갈수록 줄어드는 이공계 인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정도의 작은 일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좀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과학 전공 박사를 찾아보기 힘든 지방의 학생들에게는 이런 강연 시간이 무척 소중할 지도 모르니, 달리 보면 이건 거창하게 말한 게 아니라 진짜 필요한 일이 된다.


아무튼 뭘 바라고 한 것은 아니고 주말이고 주중이고 연차까지라도 써 가며 학생들을 만나왔는데, 이렇게 연구원에서 치하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혹시라도 시상식 중에 수상자 소감을 말하라는 시간이 있을까봐 리허설 직전에 머리를 잠깐 굴려봤는데, 정작 그런 시간은 없었다. 그래도 그 상상(?)의 순간들마다, 이 문구가 머릿 속에서 가장 자주 맴돌았다.


Silver and gold have I none; but such as I have give I thee...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사도행전 3장 6절 中; KJV 및 새번역]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