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불던 월요일 오전, 기온이 너무 낮아서 출근길에, 사무실에서, 그리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어휴 춥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는데 그 시점부터 컨디션이 나빠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KIST 플리스를 입고 오후를 보냈지만 여전히 머리가 약간 아픈 듯도 하고 추운 느낌도 나는지라 저녁에 운동 갈 계획을 취소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러시아어 수업을 마치고 잠에 들었다.


그런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화요일에 일어났을 때 두통이 조금 더 생긴 것 같았다. 머리가 무거운 것이 연구원에 출근하면 더 악화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급히 연차를 쓰고 집에만 머물러 있었다 ㅡ 이날은 진짜 오랜만에 자가격리를 이행해서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수요일, 날씨가 너무나도 쾌청했다. 한결 나아진 기분이 들었던 나는 보성에서 샀던 찻잎에 더운 물을 부어 찻물을 우려내고 텀블러에 담은 뒤 출근길에 올랐다. 해결해야 하는 서류를 처리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NMR을 손 보느라 시간을 쓰고, 나와 같이 연구하는 연구원들과의 회의를 주재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찰나. 오후 4시경이 넘어가면서 뭔가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 ㅡ 인후쪽에 이물감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머리도 약간 더 무거워진 느낌에 등도 뻐근하고. 그래서 이날 저녁을 구내식당에서 먹지 않고 바로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높았던 기온 덕분에 자동차 안은 굉장히 후끈했는데 셔츠에 맨투맨까지 입고 있었던 나는 그렇게까지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화요일에 끓여놓았던 아욱국을 밥과 명란젓과 함께 다 비우고 ㅡ 땀이 엄청나게 났다. ㅡ 밀린 빨래를 한 뒤 걸어놓고 샤워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컨디션이 좋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저녁 9시가 가까워지면서부터였다. 코 안이 건조한 느낌이 들더니 인후가 더 붓는 느낌, 약간 얼굴이 붉어지면서 열이 오르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데 등쪽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9시 반에 예정된 러시아어 수업을 급히 양해를 구하고 취소한 뒤 차곡차곡 개어놓았던 전기장판을 급히 꺼내놓아 침대 위에 깔아두고 36도로 맞춰 놓았다. 이대로 다른 일을 했다가는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던 나는 이 시간에 절대 잠이 올 리 만무했지만 그냥 무작정 데운 장판 위에 누웠다. 그리고 행정팀 직원분에게 늦은 시간 양해를 구하고 관련 상황을 설명한 뒤 혹여라도 코로나증세로 의심되는 현상이 내일까지 지속되면 검사를 받으러 가겠노라고 먼저 말씀드렸다. (지난 코로나 확진 때 미리 행정팀에 알리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흠이었던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집착이 있다.)


잠이 오긴 온 건지, 중간에 잠깐 화장실에 가느라 깬 것을 빼고는 7시 반까지 잠을 잤다. 윗집에서 오늘따라 유난스럽게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기에 깼는데, 어젯밤에 느껴졌던 '위기'는 한차례 가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이것을 과신하고 출근했다가 또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는 게 두려웠던 나는 다시 연차를 내고 행정팀과 센터장 박사님께 상황을 설명드린 뒤 하루 동안 자가격리 하여 몸 상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정말 다행히도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좋아졌다. 실내가 더워서 땀을 무척 많이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보리차를 새로 끓여 마셨음에도 오전 내내 마신 물이 족족 땀으로 나오는 기분이었다. 정오를 넘어서면서 열감은 확실히 다 사라졌고, 코막힘도 두통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행정팀 직원에게는 코로나19 추가 검사는 필요없을 상황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오늘 저녁까지 상태를 살펴볼 예정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재감염 확률은 드물고 나 또한 과민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번 그 홍역을, 아니 코로나19를 경험한 이상 무엇이든 선제적으로 약간은 과하게 느껴질 정도라도 이행하는 게 차라리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로서는 연차를 이렇게 소모하고서라도 맘 편하게 업무에 복귀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디 오늘 저녁, 내일 아무 일 없기를! 마침 병상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투석과 항암 치료를 시작한 이모를 진찰한 의사로부터 급성 백혈병 예후가 그래도 긍정적인 편에 속한다는 판단을 전해 들었다. 우리 가족과 이모 사이에 뭔가 교감이 있었던 것일까 ㅡ 아무튼 모두가 아프지 않고 하루 속히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