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중국어시험 전날. 나는 동생과 엄정화 주연의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보기로 결심했다. 진짜 무작정. 그러나 양사를 외우고 본문을 쓰다 지친 나는 어느새 잠들었고 그 피로 때문에 조조는 GG.

오늘 정말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냥 Jamiroquai 음악 들으러 돌아다니고, 그러면서 본문이랑 양사 또 쓰고, 그러다 모니터를 보면서 스티비 원더의 공연 실황을 어쩌다가 정말 우연히 만나보고. 중간에 갈산동으로 과외까지 가야했다. 시간은 금방 저녁 여덟시.

결국 우리 남매는 밤 11시 5분에 상영하는 것을 택해야 했다.

처음으로 동생과 영화를 보러 갔다. 그간 네가 대학에 붙으면 공연도 보러 가고 뭐도 해야 하고 원대한 계획(?)이 있었지만 사실 쉽지 않은 꿈이었다. 오죽하면 현충일에, 기말고사기간에야 간신히 시간이 되어 영화관을, 그것도 그 늦은 시간에 비로소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었을까?

아무튼. 엄정화 주연의 '호로비츠를 위하여'. 정말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였다. 결말에 '빌리 엘리엇'의 '빌리'가 발레리노가 되는 것처럼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경민'이가 결국 피아니스트가 되는 건 사실 누구나 불을 보듯 뻔한 스토리. 그러나 '빌리 엘리엇'을 보고 절대로 진부하다고, 심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이 영화를 보고도 절대로 진부하다고, 심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빌리 엘리엇'보다 더 와 닿는 느낌이었다. 주변에는 발레 교습소보다는 피아노 학원이 훨씬 많고 발레 공연 전단지보다는 피아노 콩쿨과 음악회 전단지가 훨씬 많은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부성애보다는 모성애가 더 감성을 자극한다는 것도 안다. 마지막으로 외국의 어린이보다는 한국의 어린이가 더 귀엽다는 사실도.. 흐흣.

무엇보다도, 정말 아무런 인위적인 장치나 전개 없이,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억지로 눈물샘을 짜지 않고도 충분히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오늘 이 밤의 '모험'에 감히 별 다섯 개를 매긴다.

그나저나 퍼뜩 드는 생각 세 가지.

  1. 다음 학기에 사회봉사 과목 수강할까? 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의 아이들을 정말로 좋아한다.
  2. 피아노 연습 좀 해야지. 물론 내 인생과 호로비츠는 이미 함께 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지만.
  3. 그나저나 내일 중국어 시험 어떻게 하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