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을 제대로 취한 추석이었다. 동생의 직장생활 하소연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였고, 이모가 묻힌 묘지공원에도 다녀오고, 아버지와 함께 인천광역시와 시흥시 경계에 위치한 소래산(蘇萊山)과 관모산(冠帽山)에 올랐다.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아수라』도 어머니와 함께 보았고, 오랜만에 용석이와 회전초밥을 먹으며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천 한산에 들렀을 때 산 소곡주(素穀酒)는 가족들로부터 인기가 많아 다음에 한 번 더 사서 함께 나눠 마시기로 했고, 아버지가 꺼내 연 와인 1551은 특유의 포도맛이 살아있어 모두의 찬사를 받았다. 지지난주 세상을 떠난 이모의 유품을 정리하러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이모가 그렇게나 많은, 그러나 비싸지 않은 옷가지와 신발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고, 서랍 어딘가에서 발견한 40여년전 인화된 사진들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가장 어린 종질(從姪) 지후는 ㅡ 정식 호칭을 찾아보니 이종사촌 여자의 아들이므로 이종생질(姨從甥姪)이라지만 ㅡ 태어난지 100일이 넘었다고 아주 얌전하고 조용했고, 시도 때도 없이 침을 흘려댔다. 쉬는 순간마다 핸드폰을 통해 '프렌즈샷'이라는 게임을 했는데 연달아 승리를 해서 기분이 좋았다.


산 이들이 만나 회포를 풀기 위해 조상들은 죽은 이를 기념하는 제사를 만들었고, 또 그와 관련된 갖가지 문화를 일궈냈다. 비록 미친듯이 쏟아지던 빗줄기와 천둥번개에 음력 8월의 대보름은 구름 뒤로 그 모습을 감추었지만, 다음날 선보인 찢어질 듯 화창했던 낮의 날씨와 익산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에서 바라 본 머리 한 움큼이 가리워진 밤의 보름달은 이번 추석이 산 이들과 함께 보낸 실로 즐겁고도 경건하게 보낸 추석이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