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은 어느 해에나 내겐 특별한 날이다. 이 땅에 60억이나 되는 바글바글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며, 또 1986년 9월 8일 그 시간에 태어났을 수백만 혹은 수천만 신생아 중에 한 사람일 뿐인 나일지라도 어느 부모에게는 크나큰 기쁨이었고 자랑이었던 것도 역시 나였다. 그리고 그 나중은 학교과 국가의 크나큰 기쁨이고 자랑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뭐 이런 성경구절이 떠오른다.)

오늘 아주 바쁜 하루였다. 생일 파티라는 구닥다리 유물(?)을 초등학교 때 일찌감치 접어던진 이래로 오늘같은 생일은 다시는 없을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만에 주말에 맞이한 생일이었다. 게다가 외할머니의 음력 생신과도 겹치는 날이었다. 이런 합동생일잔치, 흔치 않았다.

아침부터 일어나 약간의 준비를 하고 외할머니 댁에 갔다. 정말 푸짐한 밥상이 우릴 기다렸다. 세상에, 미역국이 아닌 추어탕은 너무 맛있었다. 조기와 더덕무침 먹는 사이에 종전의 배고픔은 싹 가시고 '아이고 할머니 배불러서 오늘 점심 못 먹겠어요' 하소연 할 지경이 되었다. 정말 100% 만족스러웠던 식사였다. 사실 할머니 댁에 가면 배불리 먹지 않는 날이 없지만 말이다.

할머니 생신차 집에 오신 이모는 생일 선물로 Jazz CD를 사주시겠다고 했다. 이모 曰 '성수가 재즈에 심취해 있다며?'. 나는 이 말을 '성수가 재즈에 침체돼 있다며?'라고 잘못 들었지만, 아무튼 이모는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바를 콕 집어주었다. 비록 안양에는 다양한 음반을 취급하는 가게가 많지 않아서 ㅡ 그래도 대부분의 Jazz CD는 온라인이나 Afterhours에서 구입하는 편이지만 ㅡ 그렇다고 내 생일이랍시고 홍대 앞까지 가자고 졸라댈 수는 없는 판국이니 CGV 핫트랙스에서 음반을 좀 보기로 했다.

그래서 결국 구입한 앨범은

Dave Brubeck Quartet 'The Time'
Weather Report 'Heavy Weather'
Jaco Pastorius 'Jaco Pastorius'

이 중 데이브 브루벡 쿼텟 앨범은 이모에게 '헌정'했다. 여기에는 KTF 선전에도 쓰여 아주 유명해진 'Take Five'라는 곡도 함께 실려있다. 웨더 리포트는 Fusion Jazz의 명반 대열에 꼭 끼는 앨범이다. 내가 만약 라디오 진행을 맡게 된다면 인트로 음악은 무조건 여기 실린 Birdland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코 패스토리우스는 요절한 천재적인 베이시스트로 알려져있다. 덜컥 샀다. 그리고 오늘 두 앨범을 모두 들어보았다. 요즘 한창 Bill Evans Trio의 리버사이드 4대 음반만 계속 듣고 있었는데 변화를 주는 그런 음악들이었다. 굿!

그러다가 교회로 갔다. 오늘 윤석 선생님의 결혼식. 세상에, 오늘 경사를 맞이하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아무래도 담임목사님의 아드님 결혼식이니만큼 사람이 북적거렸다. 리모델링을 끝낸 지하 식당은 아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윤석 선생님 축하드려요 :)

집에 돌아와서 택배로 받은 전자사전 ㅡ 전에 있던 사전보다 더 좋은 사전을 확실히 더 싸게 샀다. 대만족! ㅡ 의 사용법을 익힌 뒤 동생과 함께 적당히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성균관대. 수 주 전에 예매한 Malo Jazz Concert가 있었기 때문! 생각보다 혜화역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공연 시작 시간은 7시 반인에 혜화역 도착 시간이 6시 반. 당장 저녁이 급했다.

스시 하나바에서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접시 안에 든 초밥과 롤을 해치워 먹어야했다. 회전초밥집. 돌고 도는 접시엔 초밥이나 롤이 2개씩 놓여있다. 다가온다. 집는다. 젓가락으로 집어 간장에 찍어 먹는다. 그릇을 치운다. 다가온다. 집는다. 젓가락으로... 이렇게 먹다보니 열 다섯 그릇을 몽땅 해치워먹었다.

동생은 여자들의 경우 정말 저렴하게 초밥과 롤을 먹는 것이라며 이곳을 추천했지만 내 생각에 남자들은 이 곳에 오면 오히려 피를 볼 것 같다. 아무튼 내가 10,000원어치 초밥을 먹었고 동생은 6,000원어치 초밥을 먹은 셈이 되었다. 동생은 너무 많이, 그리고 빨리 먹은 것 같다며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잠시 뒤에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은 얼마 안 가 소멸되었다. 다행이다.)

아무튼 그렇게 대학로에서 빠른 저녁을 해결하고 바로 택시를 타고 성균관대로 직행했다. 성균관대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예전에 재즈동아리 GrooV의 공연 때 뒤늦게 잠깐 간 이후로 2년만이다. 재미있게도 Malo를 보는 것도 홍대 앞 Club Evans에서 본 이후로 2년 만이다. 혹여나 늦지는 않았는지. 다행히 입장시각 전이었다. 인터파크로 예매한 표를 현장수령하고 입장을 기다렸다.

앞에서 세 번째 줄. 큰맘 먹고 R석을 질렀으므로 Malo를 Club Evans에서보다 더 가까이 보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번 Malo 콘서트는 4년만에 발매한 4집 앨범을 기념한 콘서트로서 3,4집의 수록곡들과 몇몇의 Jazz Standard들로 구성되었다. 타이틀은 '지금, 너에게로'. 어쩌면 4집에 수록된 곡의 제목에서 따온 것일 수도 있다(간다! 나는 지금 너에게로 간다~♬). Malo의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 목소리와 환상적인 스캣도 마찬가지. Club Evans에서 들었던 '어머님이 우시네'와 같은 곡들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동생이 얘기하긴 했지만 확실히 말로의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같다. 특히 스캣을 할 때 몸짓을 보면 말로는 가끔 클라리넷을 연주하듯 자기 몸의 기공(?)을 여닫는 몸짓을 하는데 그건 정말 자기 자신을 악기라고 여기지 않고서야 우러나오지 않는 행동이 아닐까. 특히 '놀이터'라는 1인 아카펠라 곡에서 그의 진가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1인 아카펠라 곡을 듣기는 요요마 첼로를 배경으로 한 곡 이후에 처음으로 들어본 것이다. 뭐랄까. 확실히 Malo의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같다. 그것이 가장 최상의 표현이다.

주로 어둡고 애잔한 정서가 주로 흐르는 그의 노래는 시종일관 관객들을 휘어잡고 그 감정의 세계로 초대한다. Malo 역시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경쾌한 음악을 노래하기도 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와, 대단하다'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짧은 내 생각과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Malo의 우수성(?)은 우수에 가득찬 듯한, 하지만 절제력있고 때로는 담담한 목소리, 그리고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스캣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튼 환상적인 2시간이었다. 중간 쉬는 시간이 없었던 공연이었지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의 음악에 푹 잠겨있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동생도 대만족이었다. 사실 Malo를 모르는 동생은 'Malo는 외국사람이며, 남자이고, 밴드이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반대였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ㅡ 사실 Malo는 한국사람이며, 여자이고, 보컬리스트이다. 하지만 동생은 대개 이런 여성 보컬에 금새 빠지는 경향이 있기에 나의 '추천(?)'은 여기서 적중, 대 성공했던 것이다. 동생은 공연 내내 무아지경의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사실 무척 피곤했다. 하루가 이리도 길구나. 하지만 이와 같이 귀한 경험들을 하나씩 쌓은 생일도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늘 학업 중간에 낳아주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 외엔 별 다른 도리가 없었던 9월 8일들. 그래서 2007년의 9월 8일은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생각한다!

뜬금없지만,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 남아공 가시기 전에는 매일 밤마다 하던 인사였는데 말이죠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