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제. 처음으로 스페인어입문3 수강생들에 대한 OT가 있었다. 아, 내가 정말 스페인으로 가는구나를 실감함과 동시에 '아직도 표를 못 구한 상황'에 대한 민망함을 느끼게 되었다. 남들은 이미 다 구해놓았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니 겨울에 표 구하기 엄청 어렵다는 소리를 들어본 것 같다. 그래서 갑자기 불길한 마음이 덜컥 든 나는 어제 새벽부터 부리나케 땡처리부터 시작해서 온 항공사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각 항공사 사이트를 누벼가며 가격을 비교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최성수기'에 감히 인자한 비행기표 하나가 내게 떨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목표는 영국항공(BA)의 조기발권특가 비행기표! 그러나 이미 선각자(?)들의 손에 티켓이 몽땅 넘어간지 오래였고 나를 반기는 것은 '잔여좌석:0석'이라는 안내문 뿐이었다. (사실 그건 나를 반기는 게 아니라 왜 이제야 알아 보느냐고 나를 조롱하는 것일 게다, 틀림 없다.)

항공사에 전화를 해 봤지만 아무래도 영국항공 표를 구하길 기다리는 것은 도박이고, 게다가 임박해서 나오는 땡처리 항공권 역시 너무 위험하다. 기다렸다가 안 나오면 말짱 꽝, 도루묵이 아닌가. 차라리 베데스다 못 옆에서 물이 동할 때를 기다리는 앉은뱅이가 더 현명하다. 그래서 이 곳 저 곳 더 돌아다녔다.

그래도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참으로 '최악'의 출국일자와 '최악'의 귀국일자이다. 최악의 출국일자인 이유는 바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어중간하게 걸쳐있기 때문이요, 최악의 귀국일자인 이유는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앞둔 날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출국자들로 인천공항이 붐빌 때가 곧 12월 말이고, 입국자들로 인천공항이 붐빌 때가 역시 2월 초이다. 표가 넉넉히 남아돌 리가 없었다.

체념하고 비싼 비행기표를 사야 하나 싶었을 때, 때마침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한 항공사 직원이 1달의 여행일정이라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1회 경유하여 마드리드에 도착할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구세항공(!)는 바로 독일의 루프트한자(Lufthansa) 항공이었다. 세금이 포함되지 않은 가격은 꽤나 매력있었고 (세금 가격이 꽤 붙는다는 것을 알고 실망했지만) 사실 내가 마음 편하게 스페인에 갈 수 있으려면 ㅡ 나중에 발을 동동 굴리며 눈물을 머금고 2백만원에 육박하는 비행기 삯을 지불하지 않으려면 ㅡ 지금 이걸 아예 예약하는 것이 나았다. 에라. 예약하자. 어차피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타고 마드리드 가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다.

따라서 출국일자가 12월 29일(토)로, 입국일자가 1월29일(화)로 정해졌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마드리드로 가고, 마드리드에서는 뮌헨을 거쳐 인천으로 오게 되었다. 안습(?)인 것은 마드리드 도착 시간이 밤 11시 20분이라는 것이고 마드리드 출발 시간은 아침 7시 25분이라는 것이다. 만일 까딱하면 오밤 중에 갈 곳 없이 짐들고 헤맬 수 있다는 것이며, 잘못해서 공항에 늦게 도착하면 국제미아, 아니 국제미성년이 되는 것 아닌가.

다음에 해외 출국시 되도록이면 일찍 싸게 표를 구입하고 말리라. 사실 단기선교 때 태국-호주를 그리도 싸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수개월 전부터 표를 구입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아아. 안타깝다, 안타까워. 그래도 이 정도면 비교적 precio razonable. :) 가만 있자. 이제 남은 일은 스페인, 포르투갈 현지의 유스호스텔을 예약하는 일이다. 그 전에 일정도 대충 짜야 하는데. 아아, 뭐 이렇게 해야 할 게 많은지 원. 이래서 혼자 여행하는 게 고단한 거로구나ㅡ.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