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미국산 쇠고기 시식]
Date 2008.12.7


학기말이 다가오면서, 그리고 남아공으로 떠날 날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세상에,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출국일이 보름 정도 남았다.) 이제 학교에서 밥을 해결할 가능성이 점점 줄고, 그래서 남은 보름 정도의 기간동안 집에서 밥을 해 먹자! 하고 야심차게 쌀과 반찬들을 사기로 결심했다.

그러니까, 어제 교회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사러 이마트에 갔고, 간 김에 이것저것 사기 위해 먼저 장식물을 파는 4층에 올라갔다가 생활용품과 식품을 파는 3층, 1층, 지하로 차례로 내려갔다. 그러다가 지하 식료품 매장에서 최근에 판매가 개시된 미국산 쇠고기 제품을 보게 되었다. 2008년 상반기 내내 숱한 화제를 뿌리며 우리 눈앞에 다시 등장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과 비위생이라는 온갖 더러운 이름을 뒤집어쓴 채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예상 외로 많은 아주머니들께서 큰 관심을 보이고 계셨다.

나도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은 지 꽤 되었다. 저번에 호주산 척롤을 사서 불고기 해 먹은 게 벌써 지난 늦여름이니 요리 안 한 지 꽤 되었다. 그 뿐인가. 사실 전기밥솥이 휴면 상태에 들어간지 어언 석달 째이다. 사태가 이러니 집에서 구운 고기 요리에 대한 갈급함이 점차 누적되어 오고 있었던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이럴수가, 눈앞에 보이는 미국산 쇠고기는 가격이 정말 '터무니 없는' 수준이라고 옆에 있던 교회 누나가 이야기 해 주었다. 한우라면 이건 상상도 못할 가격이라는 것이다. 하긴, 등심 다섯 장에 10,000원이 안 되니 어디 스테이크집에 가서 비싼 돈 주고 고기 먹을 바에야 차라리 요걸 고르는 게 훨씬 경제적이지 않은가.

아무튼 그래서 그 누나와 나는 그 자리에서 미국산 쇠고기 등심 다섯 장을 10,000원 안 되는 가격을 구매했다. 그날 우리는 교회 조장 모임 때문에 밤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누나가 이야기하길 '저녁에 고기를 구워봤는데 육즙이 환상인 데다가 맛이 기가 막혀서 완전 만족했다, 가격 대 성능이 짱이니 다음에도 이마트에 가서 미국산 쇠고기를 더 사려고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게 아닌가. 어라? 그렇게 맛있단 말인가? 그래서 오늘 저녁에 나는 냉동시켜 놓은 그 고기를 먹기로 했다.

무려 8분간 해동을 하고 나서 이런저런 처리(?)를 거친 뒤에 달군 팬에 고기를 올려 놓았다. 오, 이럴수가. 무슨 전골도 아니고 팬 전체가 부글부글 고기의 육즙으로 인해 끓고 있다. 맛있는 고기 냄새가 쑥 올라오면서 고기 질은 부드러우니 이전에 구입해서 먹은 호주산 쇠고기와는 뭔가 질감이 다르긴 한 듯 했다. 쇠고기를 너무 바싹 익히면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되니까 적당히 구워서 접시에 내어 놓았다. 오늘의 고기 반찬을 위해 브로콜리도 데쳐서 담았고, 양상추/적채/새싹나물을 싸우전드아일랜드 드레싱과 버무려 샐러드도 만들었다.

저녁식사 결과!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등심 다섯 장 중 2장 반을 이미 해치웠다. 김치가 없었던 것이 최대의 단점이었으나 이건 뭐 내가 안고가야 할 짐이지. 대신 오늘은 그 어떤 날보다 집에서 야채를 가장 많이 먹은 날이었다. 앞으로 두고두고 야채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대에 부풀었다.

'미국산 쇠고기가 최고다!'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 땅의 어머니들이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개시되자 큰 관심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뭐 따로 있겠는가. 그만큼 경제적이고 맛있어서가 아닐런지. 물론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모든 언론과 인터넷에서 떠들어 대서 마음에 1% 정도 찝찝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한국인이 일주일에 쇠고기를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더구나 나같은 "자취생"이. 가끔 먹는 쇠고기라면 한우도, 호주산 쇠고기도 언제나 환영이지만 미국산 쇠고기도 썩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피크 오일(Peak oil)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쇠고기 가격도 수십만원으로 치솟을 텐데 그 때가 되기 전에 마음껏 맛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

아, 그래도 이 말만큼은. 그럼에도 미국산 쇠고기는 미친 소라는 '오명'을 쓰고 있으니 미국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는 육류의 위생과 검역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우 가격도 좀 낮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 같다. 도무지 이래서는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혀 게임이 될 것 같지 않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