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새터를 다녀왔네!]
Date 2009.02.22


새터를 다녀왔다. 새내기들의 새로 배움터. 2009년 새터는 경기도 양평에서 2박3일간 진행되었다. 05들 중 넷은 이미 새터 전일 참가였고 나를 포함한 넷은 둘째날부터 참가. 뒤늦게 가면서 '우리 같이 고학번, 혹은 졸업생들이 가도 환영받을 수 있을까' 정말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막히게 괜찮은 것이었다. 물론 09들은 08처럼 학부 생활을 하면서 만날 후배가 아니므로 ㅡ 왜냐하면 내가 학부 졸업을 하니까 ㅡ 이름을 일일이 외워가면서 친해질 동기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소개를 들으면서, 게임을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06도 네 명 왔고, 07도 예상보다 정말 많이 왔다. 오히려 08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아 놀라웠다. 심지어 04와 03도 한 명씩 왔으니 이렇게 화학부 역사상 여섯학번이 골고루(?) 참석한 새터는 흔치 않았으리라.

07들과 좀 친해지고 싶었는데 ㅡ 사실 친해지고 싶었다기 보다는 좀 더 알아가고 싶었는데 ㅡ 그러지 못했던 게 약간 아쉽긴 하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참 즐거웠던 1박2일의 시간이었다. 아쉽게도 이제 학부 활동은 여기서 끝난 것 같다. 마지막 학부 행사라면 '졸업식'이 있지만 이건 마치 관혼상제처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런 절차같은 거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나는 화학부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 05 새터 갔을 때에 우리 학부 너무 좋다고, 진짜 주변 사람들한테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화학부 소속의 선배들도 다 멋져 보이고, 동기들도 정말 유능하고 좋은 사람들인 것 같고.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스스로 화학부를 멀리하는 것이 cool한 것인양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뭐랄까. 사실 화학부는 전국에서 화학을 잘하는 몇 명을 무작위로 선택해서 뽑으면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화학부 구성원 사이에서 아무런 동질감을 찾기도 힘들고, 하나로 묶기에는 꿈도 다르고,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의 성향이나 개성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생각했다. 학부 활동을 열심히 하면 괜히 폐인스럽거나 찌질한 것 같아 보이고, 동아리나 학외의 활동을 더 열심히 하면 왠지 지경을 넓히는 더 멋진 사람인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게다가 화학을 전공하여 그 방면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고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그런 분위기가 나는 처음엔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참 실망스러웠다고 할까.

하지만 4학년이 되면서 생각이 좀 무르익고 많은 것에 너그러워진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품는 내가 과연 화학부의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있나? 내가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맞나? 정말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은 함께 하지 않는 게 속 편한 걸까? 말로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면서 왜 나는 정작 내 인생에서 소중해야 할 대학 학부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뭐가 잘났는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걸까?

어쩌면 후배들에 대한 연이은 실패랄까? 그런 것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동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름 후배들한테 이런저런 해 줄려고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들은 그에 대한 반응을 별로 보이지 않고, 어느새 서먹서먹해져 가고, 나를 별로 환영해 주지 않는 눈치인 것 같고. 그런 모습에 '쳇, 후배 잘 해줘봐야 돈만 나가고 아무 소용없네. 헛질했구나' 이런 생각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동기들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계기로든 내 생각엔 우린 좀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미 입대를 해 버리고. 게다가 복수전공을 하면서 남들은 듣지 않는 물리학부 과목을 들으며 화학부와 소통할 기회가 줄어들자 동기들간의 간극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아, 대학에서 사귀는 사람들은 정말 이런 식으로 수박 겉핥듯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걸까?

선배는 두말할 것도 없다. 아주 거만하게도 나는 선배들을 백안시해왔다. 나는 늘 '참 아쉬운 게 우리 과에는 뭔가 배울만한, 존경할만한 선배가 없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내 참. 복학한 기현이 형 외에는 정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지낸 선배는 화학부에서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참 뻔뻔히 행동했는 지도 모른다. 가끔 인사 안 하고 쓱 지나가는 후배들을 보면 참으로 기분이 묘한데, 내가 윗 선배들에게 그랬다고 생각하니 참 기분이 씁쓸했다. 선배들을 대하는 방법, 친해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너무나도 그들과 멀어진 뒤였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남들이 더 우선시된 인간 관계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고려하니 제대로 관계의 물꼬를 틀어갈 동력이 없었던 것이다. 먼저 손 내밀기 두려워하고, 이름 부르길 부끄러워 했고, 뭔가 해주길 남사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사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자신감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잘 생기지 못했어, 말주변도 없어, 행동이랑 성격이 남자답지 못해 등등. 어차피 '별로 친해지지도 못할 사람'들에게 마음을 베풀어 보아야 씁쓸하게 상처만 입을 거라고 늘 그렇게 소극적으로 지내왔다.

그러다가 '내가 삶에서 발견한 최대 모순은,상처입을 각오로 사랑을 하면 상처는 없고 사랑만 깊어진다는 것이다'라는 테레사 수녀의 말을 접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모른다. 그래, 내가 잘못 생각해 왔네. 내가 나 스스로 내 행동에 주관이 있고 확신이 있다면 상대방의 반응에 내가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다른 일도 아니고 사랑을 베푸는 일인데.

새터를 다녀온 지금, 화학부에 대한 애정은 1학년 때의 그것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당장 목요일에 학부 졸업하는데ㅠ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